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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눌의 『깜박 잊은 우리말, 우리역사』 추노(推奴)

기사승인 2024.07.01  16: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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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는 남성인 노(奴)와 여성인 비(婢)를 합친 단어다.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이 존재했다. ‘노비추쇄도감'이다. 비극적인 인간사냥의 시작점이다.

조선은 왜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노비를 유지했을까? 또 왜 이렇게 많은 노비들은 도망을 다녔을까?

조선 개국 초기 약 4.3%에 불과했던 노비가 조선 중기 인구의 약 40% 정도가 노비로 바뀐다. 태종의 노비 종부법(從父法)이 세종 14년(1432) 노비 종모법(從母法)이 시행되면서 부터다. 

이후 사대부들은 자신들에게 속한 노비들을 양인과 결혼시키도록 유도했다. 태어나는 아이들을 노비로 만들면 그 노비는 자신의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노동 즉, 경제활동을 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다. 조선의 노비 수는 급증하게 된다.

1894년엔 갑오경장으로 노비제도가 폐지되면서 공식적으로는 노비제가 사라지게 된다. 조선은 세계사적으로 독특한 노비제를 운용한 나라다.동족을 노비로 세습시켰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시대를 맨몸으로 굴러야 했던 이들의 삶이 현재를 사는 지금 우리에게 적지 않은 여운을 던지고 있다.

한문수/ 역사칼럼니스트 수필가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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