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대우 교수, 정치학 전공) |
최근 한국에서 해묵은 역사관 논쟁에 다시 불붙었다. 바로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9년인가 1948년인가라는 논쟁과 이에 수반되는 각종 논쟁들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준수한 역사관은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대한민국의 기원, 바로 건국으로 보고 이에 반하여 뉴라이트 사관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의 날 즉, 건국절로 주장한다.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주장하는 뉴라이트 인사들은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인의 나라가 없었고 한국인들은 모두 일본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런 역사관은 일제강점기를 합법으로 보고 그 당시는 한국인이나 대만인도 일본국적자였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역사관, 나아가 일본의 법논리와 동일하다. 그런 일본의 역사관은 일제강점기는 합법적 기간이었으므로 일제의 행위를 모두 일본의 법적 관점에서만 본다는 근본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합법으로 보는 역사관과 법논리에 입각한다면 일제강점기에서의 독립군이나 독립운동가들, 임시정부 등의 항일운동은 모두 불법행위가 되고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테러리스트가 된다. 이런 뉴라이트 사관은 일본정부, 특히 일본 자민당 우파의 역사관과 똑같다.
그런데 뉴라이트들이 건국 대통령으로 추대하는 이승만이나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통령으로 칭찬하는 박정희는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역사관을 거부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승만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으로부터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고 스스로 주장했고, 박정희는 1965년 일본과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그 제2조에서 일제강점기를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1943년 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카이로회담에서 채택된 카이로선언에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과 영국 처칠 수상, 그리고 중화민국의 장제스는 “노예상태에 놓여져 있는 한국을 적당한 시기에 해방시키고 독립시킴을 결정한다.”는 문장을 작성하여 ‘한국특별조항’으로 승인했다. 이런 카이로선언의 한국특별조항이 포츠담선언 제8조에 흡수되었고 일제가 포츠담선언을 수용해 연합국에게 무조건 항복했기 때문에 한국특별조항은 일제도 수용한 법적 효력을 지닌 내용이다.
‘한국특별조항’에서 연합국 대표였던 세 정상은 “한국인민의 노예상태”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임을 인정했다. 이 말은 당시 한국이 존재하고 있어도 일제에 의한 노예상태였고 국제법으로 볼 때 한국인들은 노예노동으로 고통 받고 있음을 인정하는 표현이었다. 즉 일제강점기를 ‘한국을 노예상태로 만든 불법기간’으로 규정한 것은 연합국이고 일제는 이 내용을 수용하여 무조건 항복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가 불법이자 한국인들이 노예상태였다는 것은 국제법 논리로 1945년 이전에 이미 합의된 내용이다. 현재 일제강점기를 합법이라고 주장하는 뉴라이트계 학자나 정치인들이 이런 기본적인 국제법 논리에 무지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있어 이런 행위는 민족반역행위로 봐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카이로선언의 ‘한국특별조항’을 탄생시킨 데 가장 노력한 사람으로 김구와 이승만이 거론되는데 뉴라이트계 인사들은 이승만이 미국기독교를 통해 루즈벨트를 설득해 ‘한국특별조항’을 만들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이 노예상태였다고 이승만도 일제강점기 자체를 불법으로 주장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데도 뉴라이트계 인사들은 그들이 추대하는 이승만의 의사와 반대로 일제강점기가 합법이었다고 파렴치하게 주장한다. 그들은 현재 건국절을 제정하기 위해 이승만의 신념마저 왜곡하여 그들의 입맛에 맞게 심하게 날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가 합법이었고 1948년 8월 15일이 건국절이라는 주장은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근본 사상을 부정하는 논리다. 결국 뉴라이트계 인사들은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대표적 보수로 내세우면서도 두 사람의 사상과 신념을 왜곡하여 이승만과 박정희를 100% 이용하고 있다.
이승만이 당시 반공을 위해 친일세력을 철저히 이용했기 때문에 뉴라이트계 인사들은 그 반대로 이승만이나 박정희를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이용해서 자신들의 친일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다.
오늘날 뉴라이트계 인사들은 보수의 전통적인 가치관인 친미, 반공에 친일이라는 프레임을 추가했다. 뉴라이트 운동이란 한국 내의 진보세력을 일소하고 친미, 반공, 친일 노선을 강화, 심화하여 북한과 중국이라는 ‘사회주의 세력’을 붕괴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일련의 사태들은 독립운동가 후손들뿐만이 아니라 양식이 있는 모든 한국인들의 인내심을 한계로 몰아놓았다. 이 문제는 윤대통령이 말한 “먹고 살기에 바쁜 국민들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 절대 아니다. 이런 문제는 한국인의 영혼과 관련이 된 문제다. 한국에는 한국의 정체성을 목숨 걸고 지키려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고 한국과 국제법을 어기려는 세력을 용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8월 12일 뉴라이트 논란의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기자 인터뷰 모습 |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