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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마흔여섯번째

기사승인 2018.03.19  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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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만나자는 걸까, 피하자는 걸까?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얼렁뚱땅의 미학 - 감추는 보임

이번에는 보여주고 싶진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보여야 하는 곳의 얼렁뚱땅이다. 소비자 보호의 법 규정에 따라 제품의 정보를 주는 방식에서 글씨를 깨알같이 써서 읽으라고 한다. 포장에 자리가 충분히 있어도, 별 정보를 말해주지 않는 단순한 제품명이나 생산자와 판매자에 유리한 시각정보로만 골라 가득 채운다.

깨알같이 써주니, 읽으라는 것 같기도 하고 읽지 말라는 것 같기도 하고... 이도 하나의 전형적인 ‘보이는 감춤’의 전략이다. 보여야 적법(適法)일 텐데, ‘너무 잘’ 보여 성분이나 품질의 ‘아픈 사연’이 드러날까 무섭다.

이럴 때, ‘이익은 최대로, 손실은 최소로!’ 하는 ‘보이는 감춤’ 내지 ‘감추는 보임’의 전략이 ‘딱’이다. 이런 ‘딱’의 논리 속에서 소비자만 번번이 딱하게 된다.

또, 계약서를 쓰는 소비자에게 ‘너무 긴’ 약정 텍스트를 써서 읽게 하고, ‘별거 아니에요.’ 혹은 ‘시간이 없어요.’ 혹은 ‘다 그래요.’라는 말로 부추기면서, 빨리 서명하게 몰아 부치는 것이 관행이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이성을 이렇게 마비시킨다. 보는 것도 읽는 것도 방해하고 필요한 정보를 물을 기회도 빼앗으면서, 자신들이 정한 거래의 방식을 빨리 받아들이게 몰아간다. 별로 생각할 사이 없이 ‘얼떨결에’ 빨리하게 하면서 정보노출의 시간을 단축하고, 남의 눈을 피하여 재빠르게 슬쩍하면서 정보노출 공간을 단축하려 한다. 시간과 공간이 단축되면서, 노출되는 정보의 양과 올바른 판단의 기회는 줄어든다.

여기에 외국어도 외래어도 아닌 어려운 말이 가세한다. 어려운 만큼 보이고 싶지 않은 정보를 숨길 수 있다. 떳떳하지 못한 정보가 노출되는 만큼, 사고파는 계약이 이루어질 확률이 떨어지는 위험이 있다. 따라서 ‘얼른 뚱땅’ 서명을 받아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소비자는 이익이되 나는 손해다. 내가 이익을 보고 소비자가 손해를 봐야 할 텐데... 불안하다. 

이번에는 ‘들릴 둥 마는 둥’ 하는 소리로 중의법을 구사하는 얼렁뚱땅이다. 사람들이 자주 가는 유원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나 맥아더 장군 등을 잘 그린 그림을 옆에 세워 놓고 보게 하면서, 값을 물으면 ‘들릴 둥 마는 둥’ 스쳐가는 소리로 대답해 놓고, 다 그린 후 부른 대로 값을 쳐주니, 오리발을 내밀고 생떼를 쓰며 그 6배의 값을 요구한다.

하하하하... 어이도 없지만, 참으로 신기하다. 사람들은 이중 삼중으로 속은 기분이다. 우선 잘 안 들리는 소리로 말해 놓고, 나중엔 딴 소리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작아도 충분히 명료하게 들을 수 있는 볼륨이다. 그런 가격일 때, 그려 달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소리는 오리발 빌미의 한 수단일 뿐이다. 작은 글씨가 생각난다. 녹음이 안 되고 문서화가 안 된 계약은 이런 빌미를 기능하게 한다. 모두가 일종의 중의법이리라. 여기에 ‘쪽 팔릴’ 수 있는 체면의 논리도 이런 오리발을 도와준다.

또, 초상화라고 그린 그림이 그려진 사람의 얼굴도, 박정희의 얼굴도, 그린 사람의 얼굴도 아닌, 그들이 섞인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얼굴 모습이다. 그린 그림이 보이는 상(像)과 ‘같아야’ 혹은 ‘닮아야’(肖) 초상(肖像)화인데... 안 닮았으니, ‘이상(異像)화’?

이제 돈만 쓸데없이 떠나갔을 뿐이다. 아니, 돈만이 아니다. 시간도 허비했으며 기분도 나쁘다.


‘공주 밤’들은 부지기수

‘공주 밤’의 논리가 여기서 끝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유사한 일, 동일한 일들이 일상에서 반복하여 일어난다. 그러니 문화다.

계약서나 증빙자료가 없는 관행을 이용하여 약속 후 나중에 ‘오리발’ 내밀기, 투자한 돈의 횡령, 동물사료로 사람음식 만들기, 대화에서 힘으로 밀어붙이기, 전시행정이나 ‘떴다 부동산’, 명품으로 둔갑하는 ‘짝퉁’, 국회의 밀실예산, 건축자재 빼내는 공사현장, 거대하고 현란한 간판들, 감추면서 보이는 광고들, 보이스피싱, 수산물 시장이나 주유소 등에서 저울 눈금 바꾸기, 이름을 바꾸면 영업을 재허가하기 등에서의 얼렁뚱땅 등 그 예는 수없이 많다.

우리들의 사람크기, 함께 크기 그리하여 결국 삶의 크기를 작게 만드는 이런 목록들은 맘만 먹으면 한없이 길게 늘일 수 있을 것이다.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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