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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배 박사의 『갑질시대 소통인문학』 육십 여섯번째

기사승인 2018.07.08  18: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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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로 함께'의 시대에 '더 사람', '더 함께'를 말하다

불통이 자연스런 시대

이하배 (베를린 자유대, 철학박사)

 

 

 

 

 

 

 

 

 

 

반도, 섬보다 더 섬 - 반도의 반(半)도 하나의 우물

이 땅의 3면은 바다다. 그래서 한반도(韓半島)다. 한반도의 남쪽 반(半)은 더 좁아진다. 이 땅도 반도(半島)는 반도다. 다른 나라나 민족들의 삶 방식과 만날 수 있는 길이, 예를 들어, 근동, 중동, 인도와 북아프리카까지 활발하게 진출하게 하는 지중해로 시작하는 유럽의 국가들에 비해 많이 좁다. 물론, 이제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지리적으로는 3면이 바다로 나뉘며, 주변에 나라들이 많지 않고, 그나마 주로 몇몇 나라에 치우쳐서 만나고 소통해왔었다. 여기에 일제 식민지와 그리고 해방 후엔 분단이 가세한다. 남북에 서로 다른 정치, 경제, 문화, 교육의 체제가 들어서서,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정하고 서로 밀어내고 갈라서왔다.

한 번 엄청나게 ‘진하게 만나는’ 충돌의 비극이 전쟁의 형태로 일어난 후,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소통의 길은 더욱 얼어붙었다. 서로 아니다 하면서도 기다라고 하며 기다라고 하면서도 아니다 하는 가운데, 이제 약간씩의 물꼬는 터지기 시작했으나, 수없는 소통의 장애물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필자가 분단된 베를린에 80년대 중반에 도착했을 때, 커다란 다름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베를린은 동독 안에 있다. 동독 안에 있는 베를린은 다시 동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어찌 보면 이중으로 분리된 베를린에서 서쪽의 반 정도만이 서독의 땅이다. 우리들은 우리나라의 옛 수도가 ‘북한’에 위치해 있는데, 그것에서 남쪽의 반이 ‘남한’에 속하여 남한 체제로 도시의 삶이 진행된다고 상상해본 적이 있을까?

서 베를린은 자치공화국이 아니므로, 서독과 서 베를린을 하나의 방식으로 잇는 뭍길과 하늘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서독과 동독 사이에도, 좁지만 일정한 방식으로 소통의 길이 열려 있었다. 이 반쪽, 아니 반에 반쪽의 도시와 지구촌 곳곳 사이에서 사람들이 오가고 문물이 오간다.

이제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길인 뭍길이 분단과 함께 막히면서, 대륙으로 뻗어나가기가 훨씬 어려워졌다. 지리적으로 정치적으로, 지금의 유럽에서처럼 이웃나라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나 배가 아니더라도, 비자도 없이 걸어서, 자전거 타고, 자동차나 기차 타고 국내에서 이동하듯이 이렇게 떠나고 만날 수 있는 길이 우리에게는 없다.

가까운 주변에도 다른 나라들이 별로 없다. 일단 뭍길로 갈 수 있는 주변의 나라도 중국이 거의 유일했었다. 몇몇 이웃나라들조차도,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교류해왔기에 정치, 경제, 문화에서 비슷한 면들도 많다. 우리가 유럽이나 아프리카의 한 민족이나 문화를 만나는 일에 비해, 다름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그나마 일제가 막았고 분단이 막는다.

동족상잔 이후로 중국과는 90년대 초 국교수립 이후로 왕래가 가능해졌다. 가까운 이들 나라라도 만나보려면, 소득도 많지 않고 시간도 많이 낼 수 없는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이동의 여비와 시간이 많이 부담스러워진다. 적은 소득이나마 집세에, 학원에, 반찬에 쪼개고 쪼개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 이유에서 이런 이웃들을 직접 만나기는 어려우니, 주로 TV나 영화 혹은 책, 잡지 등 대중매체를 통해 걸러진 것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만난다. 이런 간접적이고 부분적이고 걸러지는 만남의 효과는 직접 가보는 만남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그렇다. 현격하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기 때문이다.

80년대 중반에 독일 노동자들의 연가가 한 달 이상이고, 노동자 신분으로 이 휴가를 비행기를 타고 터키로, 스페인으로, 지중해로 날아가 보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군대휴가를 빼고는 휴가를 접해본 적이 없는 필자로서는, 처음엔, 휴가와 여행의 구분도 쉽지 않았었다. 휴가도 집에 돌아와서 집에서 쉬었다 가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주지하다시피, 휴가(休暇)의 暇(가)는 겨를을 뜻한다. 독일어로 휴가(Urlaub)는 ‘허락하다’(erlauben)의 명사형에서 유래한다. ‘허락받아 쉬는 시간’ 휴가와 ‘다름 만남’인 여행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하나는 기존의 만남관계들을 떠나 쉬는 것이고, 하나는 새로운 다름들을 만나는 일이라 할 것이다. 하나는 옛 만남관계에서 잠시 나오는 쉼이요, 하나는 새로운 만남관계로 잠시 들어가는 긴장이랄까?

이런 지정학적, 경제적 조건 속에서 우리들이 ‘한국 밖’, 특히, ‘많이 한국 밖’을 만나기는 많이 어렵게 된다. 바깥의 다름을 만나기 어려운 만큼, 다른 사람들, 달리 사는 방식들에 열리고 이를 인정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니 어렵게 하나의 다름을 만나도, 이를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그만큼 쉬워진다. 다양한 다름들과의 소통크기가 작은 만큼, 우리들은 갇혀있다 할 것이다. 다름 배제의 정도는 갇힘의 정도에 비례하고, 갇힘은 자신만의 세상크기를 결정해준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다름을 ‘많이’ 만나고 접할수록, 그 다름은 이상하지 않게 되고, 그 다름을 이상하게 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급기야 이런 다름들에 약간은 중독(中毒), 아니, ‘중약’(中藥)되기도 한다. 다름 만남이 독이 아니라, 우리들의 함께를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약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많이 접한 것은 이제 더 이상 다름이 아니라 할 것이다. 하나의 다른 것을 보고 또 보면 이상함, 신기(神奇)함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군대의 내무반에서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사람들이 함께 만났을 때, 신기하고도 이상하게 여겨지다가, 하루 이틀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자며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같은 일과를 수행하다보면,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되고 친숙하게 되면서 이상함이 줄어들고 경계나 배제의 마음이 나날이 줄어든다. 그 결과, 오히려 다름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커져 감을 느끼기도 한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특정한 외국어를 배울 때는 물론, 상급학교에 입학하여 새로운 반이 생길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해외의 여러 나라들을 다니다 보면, 피부색이나 언어, 문화, 종교 등에서 다양한 민족들을 만나면서, 우리도 이들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름을 많이 만날수록, 같음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3면이 바다요, 1면은 어떤 소통도 거의 불가하게 막혀 있는 땅에서, 다름 만남의 조건은 많이 열악하다. 이제, 여행 즉, 다름 만남의 기술적 여건은 과거에 비해 획기적으로 좋아졌다. 그래서 기대가 되기도 한다.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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