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창포는 해변가에 있는 창고 즉 소금창고나 절인 생선창고가 많았던 포구이다. 무창포의 ‘무’도 물의 옛말이다.
염창동도 소금창고들이 있던 곳이다. 경주 중문단지도 원래 중물단지이며 그 근처에서 수도하던 중이 물을 마시러 내려오던 곳이다.
경주 보문단지는 보문사가 있던 곳이다. 신라초기에는 물을 ‘미’ ‘메’라고 하였다. 고려 때는 ‘무’라고 하였다. 조선 때는 ‘문’이라고 하며 ‘물막이’를 ‘문막’이라고 하였다. 미, 마, 미르, 미리가 모두 물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물이 ‘머리’로 변하는 경우도 있다.
양양의 하조대는 조선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늘그막에 벼슬을 내어 놓고 여생을 보내던 넙적 바위이다. 지금의 정자는 그 후손들이 나중에 지은 것이다.
포항 ‘두마리’ 마을은 둔덕에 있는 마을이다. 둔들마, 두들마, 두마가 지금의 죽장면 두마리가 되었다. 구한말 때까지는 청하군 죽남면이었다. 계룡시 두마면도 역시 같은 의미이다.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