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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실하 교수의 『남북한 단군영정 통일을 위한 제안 6』

기사승인 2019.01.14  21:3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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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은 할아버지 모습인가?

할아버지가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단군 할아버지’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단군 할아버지’라는 표현은 (1) ‘단군은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라는 것으로, 혈연적으로 우리 모두의 조상 할아버지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명이지,(2) 단군의 모습이 ‘늙은 할아버지 모습’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제시한 자료에서 보듯이, 현행 남북한의 단군영정은 검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다. 일부 민간의 단군영정이나 어린이 책에서는 흰 수염이나 피부의 주름 등으로 분명하게 ‘늙은 할아버지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많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를 건설한 사람들은 ‘늠름한 젊은 장군의 모습’이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은 ‘늙은 할아버지 모습’일 수는 없다. 이런 모습은 건국 이후에 물러나 ‘산신이 된 단군의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필자는 남북통일시대의 단군영정에서는 ‘검은 수염에 건장한 장년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본다.  
 
비파형 동검과 단군: 장군 모습의 단군도 가능하다.
 
현재 남북한의 공인 단군영정은 할아버지 모습뿐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통용되는 각종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그림책, 이야기책에는 어린 시절의 단군, 젊은 시절의 장군 모습의 단군 등 ‘다양한 나이대의 단군 모습’이 그려져 있다. 특히 젊은 시기의 단군 모습에서 보이는 각종 복식 등은 근거도 없이 ‘그리는 사람 마음대로’ 그려져 책마다 다른 모습이다.
 
필자는 2가지 모습의 단군영정을 제작해야한다고 본다. 곧 (1) 현재의 영정처럼 평상시의 모습과, (2) 비파형동검을 들고 있는 무장 모습의 단군영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각종 동화책, 이야기책에서 근거를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고조선이 건국되는 시기는 청동기시대로 각종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시대였다. 대부분의 국사교과서는 고조선의 대표적 유물로 비파형동검을 주목하고 있고, 비파형동검의 분포 지역을 ‘고조선의 문화권’ 혹은 ‘고조선의 영향권’ 등으로 고조선과 연결시키고 있다. 2007년 개정된 교육과정에 따라 제작된 중학교의 역사교과서에서 해당 부분을 보면 아래와 같다.

<자료 35> 동이족의 분포와 고조선의 세력 범위

① 청동기 시대에 만든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탁자식), 미송리식 토기와 팽이형 토기는 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 지방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는데, 이를 통해 고조선의 문화권을 짐작할 수 있다.
② 비파형 동검과 고인돌(탁자식), 미송리식 토기 등이 고조선 문화를 대표하는 특징적 유물이다. 고조선은 이들 유물이 분포하는 지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③ 탁자식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 등의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을 통해 고조선의 영역을 짐작할 수 있다.
④ 오늘날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비파형 동검과 탁자식 고인돌, 미송리형 토기와 팽이형 토기는 이러한 고조선의 문화 범위와 세력 범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파형동검의 분포도는 대부분 요동, 요서, 한반도 지역을 중심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비파형동검이 발견되는 최북단은, 북위 49도 부근에 있는 현재의 호륜패이시(呼倫貝爾市) 악온극자치기(鄂溫克自治旗: 에벤키족자치기) 이민하매광(伊敏河煤鑛)유지이다. 이곳에서 1982년 5월에 이미 길이 34.2, 최대 폭 5㎝의 비파형동검 1점이 발견되었다. 

<자료 36> 2000년 기준 비파형동검 분포 범위와 숫자, 아래 지도는 발굴된 유적지(약 148곳)를 표시한 것, 한 유적지에서 1개의 동검이 발견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므로 동검의 숫자와는 상관없다.

  
많은 사람들은 위에 제시한 일반적인 비파형동검의 분포 지도에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존의 분포도에서는 비파형동검이 출토된 유적의 ‘위치’만을 표기할 뿐이고, 그 유적지에서 얼마나 많은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는지 ‘비파형동검의 발굴 숫자’는 알 수가 없다.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출토된 비파형동검의 숫자는 한반도 지역보다는 요서, 요동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시기도 빠르다는 점이다. 2000년 현재까지 비파형동검은 총 331개가 출토되었는데, (1) 적봉시를 중심으로 한 내몽고 동부 지역이 19개, (2) 요녕성의 요서 지역이 91개이고 요동 지역이 128개, (3) 길림-장춘 지역 지역이 18개, (5) 한반도 지역이 75개 등이다. 

<자료 37>

  
그런데, 하가점상층문화(BC 1500-500) 시기의 유적에서는 (1) 비파형동검, (2) 청동제 투구, (3) 청동제 갑옷, (4) 청동제 단추로 장식된 장화 가운데 몇 가지는 동시에 출토 되는 경우가 많다. ‘비파형동검을 들고 청동제 투구, 갑옷, 장화를 갖춘 장군 모습의 단군’은 과장이나 억측이 아니라 고고학적 근거를 가진 합리적인 추론이다.
  
실제로 이런 모습의 장군상이 요녕성 조양시의 조양박물관에 동상으로 만들어져 전시되고 있다. 조양박물관에는 (1) 하나의 전시박스 안에 무려 21개의 비파형동검과 거푸집이 전시되어 있으며, (2) 2011년 재개관 당시의 설명문에 “조양시에서 청동단검=비파형동검=요녕식동검이 출토된 묘(墓)가 이미 100개가 넘었다(朝陽發現的靑銅短劍墓已超百座)”고 소개하고 있으며, (3) 전시 박스 옆에는 비파형동검과 같이 출토되는 투구와 장화 등을 갖춘 당시의 군장급 인물의 동상도 전시되어 있다. <자료 39> 참조 
 

<자료 38> 요하문명 지역 청동기시대 유적 분포도

 

<자료 39-1> 조양박물관 비파형동검 전시박스와 장군상(2015.5.14. 필자 답사 자료)
<자료 39-2> 전시 박스 안에는 21개의 비파형동검과 거푸집이 전시되어 있다.
<자료 39-3> 박스 우측에 전시된 비파형동검 6개
<자료 39-4> 비파형동검을 든 인물상으로 투구, 갑옷, 청동 단추가 장식된 장화 등이 함께 출토됨.

 

단군은 어떤 모습일까?

풀과 나뭇잎으로 장식된 단군상은 더 이상 공인영정이어서는 안 된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의 모습은 (1) ‘수염을 기른 건장한 장년의 모습’의 평상시 모습과 (2) 비파형동검을 들고 청동제 투구와 갑옷 그리고 청동제 단추로 장식된 장화를 신고 있는 ‘비파형동검을 든 장군 모습’이 모두 가능하다고 본다.

단군의 모습

 

다음에 계속!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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