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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재원의 『어원으로 본 단군조선』 - 묏밥

기사승인 2019.03.24  11: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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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은 제정 일치시대에 가장 중요한 종묘제례를 총괄하는 제례관

 국어사전에 뫼는 사람의 무덤. 묘墓. 산소山所를 말하며 묏자리는 뫼를 쓸 자리, 또는 쓴 자리로 나와 있다. 또 ‘뫼’는 ‘뫼 드리다(供飯)’처럼 높은 어른에게 올리는 끼니 음식을 말하기도 한다. ‘모시다’는 말도 ‘뫼시다’에서 나왔으니 원래는 어른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을 뜻한다. 뫼는 몯>못>모시>모이>뫼(음식)로 보며 뫼밥은 제사 때 올리는 밥이라는 의미가 있다.

 

 지금은 기제사를 모두 집에서 지내지만 옛날에는 묘소에 가서 지냈다. 그것이 지금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가을의 묘사 때에만 조상의 산소에 가서 지내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뫼가 제사상에 올리는 밥이라고 하는 근거는 삼황오제 시대에 종묘(사당)에 제사 지내는 역할을 맡았던 중부일계中父日癸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부일계 곤鯀은 비록 왕위에는 오르지 못한 인물이었으나 삼황오제 시대를 통틀어 정치권의 중심에서 무소불위의 대권을 행사하였던 인물이다. 그의 딸인 간적簡狄이 그 당시 삼황오제중의 하나인 제곡고신帝嚳高辛(재위 55년. 기원전 2420년-2366년)의 차비次妃요, 또 누이인 종규終葵가 제곡고신의 정비正妃였으니 중부일계 곤은 왕의 장인어른이자 처남이었다.

 그리고 딸 간적이 낳은 세 아들 지摯, 직稷, 우禹 중에서 지摯는 다음 왕위에 올랐으며, 우禹도 요와 순에 이어 순의 사위로서 왕위에 올랐으니 그들은 모두 곤의 외손자들이었다. 그런 관계로 곤은 제정 일치시대에 가장 중요한 종묘제례를 총괄하는 제례관의 직책을 맡아 종묘제례를 혁신하여 그 격식을 정립한 인물이다.

 

종묘제례 모습, 사진출처=조선pub 기사 참조

 

 중부일계中父日癸 곤鯀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계뫼(癸△, )이다. 즉, 뫼가 처음으로 제사 밥(그때는 쌀밥이 아니라 피밥이었다)을 올리던 풍습에 따라 후세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따서 뫼라고 하였으며, 무덤에 뫼를 올리는 일을 ‘뫼사’ ‘묘사墓祀’라고 하고 무덤도 ‘뫼’ ‘묘’라고 한 것이다. 묘사를 지금은 일반적으로 시제時祭라고 한다. ‘△’은 피라밋 모양으로 고구려 이전까지 우리민족의 무덤모양이기도 하다.

  중국 서안에는 피라밋 군락지가 있다. 중국내에도 이러한 대형 피라밋이 100여개나 산재해 있다. 이것은 1945년에 이곳을 비행하던 독일 주둔 미국 수송기 조종사의 항공사진 촬영에 의하여 처음 세상에 밝혀졌다.

 중국은 처음에 이 사진과 보고서를 조작된 것이라고 계속 발뺌하였으나 서구학자들의 발굴요구 및 케이블방송 보도 때문에 그 존재를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1973년에 실시한 고고학계의 탄소 연대 측정법에 의하면 진시황 무덤보다 수천 년이 앞선 5~6 천 년 이전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발굴기술과 유물보존 기술이 부족해서 다음 세대로 발굴을 연기하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중국 집안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무덤도 피라밋 모양이다. 북한의 단군릉을 피라밋으로 복원한 것도 서안의 피라밋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원래 산山의 시원 글자가 이다. 또 은 사당대문의 솟을지붕의 모양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묘廟를 뜻하는 글자가 되었으며 ‘뫼’가 종묘宗廟 제례를 관장하던 곤의 별명別名이었다. 그래서 뫼가 제사 지낼 때 올리던 밥이라 하여 뫼밥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산이 뫼라면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 ’라는 시조에서 태산을 왜 태뫼라고 하지 않고 무덤만 ‘하늘아래 뫼’라고 표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여기서 보듯이 산은 산이고 뫼는 묘소로 구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태산이 높다하나 하늘에 비하면 하나의 작은 묘(무덤)라는 말이다. 산을 뫼로 하여 ‘태뫼가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라고 해서는 문장이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신기철. 신용철의 <새 우리말 큰사전>에 ‘뫼’를 ‘끼니 음식’으로 본 것이나 서정범 교수의 <국어어원사전>에서 ‘뫼’를 ‘음식’ 또는 ‘제사때 드리는 밥’으로 본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묏밥은 뫼와 밥의 합성어로 ‘뫼’가 애초에는 산이라는 뜻보다는 제사 때에 무덤에 밥을 올린 곤의 이름인 ‘뫼’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또 절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밥에서 연원 하였다고도 보는 이도 있으나 절에서는 묏밥이라는 말이 없고 ‘공양’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절에서 유래된 말은 아니다.

 

 

박하영 기자 p-hayoung70@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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