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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 박사의 『환단고기』 위서론 논박論駁1

기사승인 2019.10.08  16:3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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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고대사와 국통 맥을 밝혀 줄 사서들이 중국과 일본 등 외세의 침탈과 내부의 사대주의자들에 의해 모두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정통 사서가 바로 『환단고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주로 강단사학자들이 『환단고기』를 조작된 책이라 평가해 왔기 때문에, 수십 년간 그 사료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 있다.

과연 『환단고기』는 위서인가? 그 해답은 일본, 중국, 중동 등지의 고대사 역사 현장에서 찾을 수 있다. 그곳을 답사해 보면 『환단고기』는 진실이 가득 찬 역사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환단고기』야말로 한민족과 인류의 잃어버린 태고 역사를 되찾아 줄 유일한 역사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류 강단사학계가 『환단고기』의 독보적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위서론자들이 책 제목인 『환단고기』의 뜻조차 모르고 둘째, 『환단고기』를 단 한 번도 깊이 있게 제대로 읽지 않았으며 셋째, 유불선 경전을 비롯한 동북아의 고전과 인류의 시원 종교인 신교의 우주론에 대한 이해가 천박하기 때문이다.

『환단고기』를 바르게 해석하려면, 『환단고기』 저자들만큼 높은 학덕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한 법이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저자들의 신관과 인간관, 우주론과 역사관의 언어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을 일삼는 것이다.

위서론들이 『환단고기』를 비판하는 더욱 본질적인 이유는 식민사학이 붕괴되어 자신들의 기득권이 상실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달과 직결된 식민사학의 아성을 방어하기 위해 『환단고기』를 매도하고 헐뜯는 것이다.   [환단고기 역주본, 『환단고기』 진위 논쟁 참조]

이번부터 환단고기 위서론에 대해 상생문화연구소 유철 연구위원의 연구 논문을 5부로 연재코자 합니다. [편집자주]

 

유철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위원

 

9천년 역사, 반만년 역사, 2천년 역사?

우리 한민족 국가의 역사를 말하는 숫자이다. 각 역사학자마다 주장하는 내용이 다르다. 환단시대를 실제 역사로 환산하면 9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조선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라고 주장할 경우 반만년 역사가 될 것이고, 고조선은 신화라고 말하면 우리는 2천년 짧은 역사를 가진 국가와 민족이 될 것이다.

그러면 과연 이 셋 중에서 가장 올바른 역사관은 무엇일까? 역사를 규정하는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오랜 기간 구전口傳되어 오는 것으로 판단하는 방법, 기록을 검토하여 판단하는 방법, 유물과 유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이다.

구전되어 오는 것을 역사로 규정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지만 구전의 정확성이나 구전되는 과정에서 구전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할 가능성, 마지막 구전자가 구전없이 사망할 경우 등에서 한계를 갖는다. 기록은 구전보다 신뢰성과 후대로의 전수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또한 기록의 사실성에 주관이 개입할 여지는 남아있다.

그리고 유물과 유적은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정확한 자료이다. 현대 과학은 유물의 연대를 정확히 측정하여 그 시기를 판단하므로 유물을 통해서 그 유물의 주체와 역사를 추정하는 것은 역사학의 중요한 수단이 된다.

이 세 가지 방법은 각자 나름의 가치를 갖는다. 하지만 그 어느 하나만을 근거로 역사적 진실을 판단할 수는 없다. 구전되다가 기록으로 남을 수 있고, 기록은 유물과 유적으로 확인될 경우에 더 신뢰성을 얻게 되거나 기록에 의해서 유적이 발견되기도 할 것이다. 전자는 문학이나 신화, 역사에서 많은 사례가 남아있다. 후자 또한 역사학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기록은 역사를 전하고 판단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모든 역사기록은 후대의 연구에 소중한 자료

동서고금의 모든 역사서는 오래전부터 구전되던 것과, 그 당시 혹은 그 이전의 사건이나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역사 기록은 일단 그 가치를 인정받아 후대의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물론 그 기록의 진실성은 다양한 검증이 필요하다. 다른 기록과의 비교에서, 혹은 기록과 일치하는 유물과 유적에서, 혹은 기록된 이후에도 계속 구전되어 오는 내용으로 그 사실성이 확인될 수 있다.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우리 역사는 2천년이라고 주장하던 때도 있었다. 다양한 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역사기록을 남겼지만 그 기록들이 오랜 세월의 흐름에서 분실, 소실, 유실되어 단 몇 가지 기록만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유물의 수적 한계와 유물해석의 편향된 시각, 및 우리 역사를 지우려는 악의적 의도에서 나온 주장이다.

그나마 요즘은 깨어있는 역사학자들의 주장과 여러 역사유물의 발견, 그리고 역사서에 대한 객관적인 해석으로 고조선을 역사로 인정하여 우리의 역사를 반만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우리의 역사를 9천년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 《환단고기》가 존재한다. 수많은 사서들이 소실된 상황에서 우리 국통의 맥을 9천년 전부터 기록하고 있는 《환단고기》는 지금까지의 역사관을 완전히 뒤바꾼 역사서이다.

《환단고기》에는 인류 최초의 국가인 환국과 환국을 이은 배달의 강역과 역년이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 민족의 고유 사상과 종교의 원형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전통사서가 빈곤한 우리 역사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제 학계에서는 《환단고기》를 철저히 연구해서 뿌리잘린 고대사와 망각된 국통맥을 되살려 당당한 한민족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환단고기》가 대중화되고 인류 시원 민족의 혼과 웅대한 역사가 의식있는 국민들의 가슴을 벅차게 하고 있을 때, 강단사학계의 뒤편에서는 무서운 음모가 시작되고 있었다. 《환단고기》의 출현으로 기존에 연구된 역사학의 내용을 모조리 내팽겨쳐야 할 위급한 상황에 직면해서 그들은 “《환단고기》는 위서僞書다”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이제 막 출현하여 학술적으로 연구되고 그 진실성이 검토되어야 할 역사서에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그들이 내린 판결문에는 다양한 죄목이 덧씌워져 있었다. 그 이후 《환단고기》 위서론은 일파만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일명 ‘환단고기 위서론 바이러스’가 그 책을 잡은 사람들의 의식을 감염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글의 목적은 《환단고기》가 과연 위서인가? 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주장을 검토하고 그 허위성과 비논리성을 논박하는 것이다. 위서라는 주장이 거짓임을 밝힌다면 그로부터 《환단고기》에 대한 올바른 접근과 객관적인 연구가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

 

지승용 기자 jsr6867@naver.com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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