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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제국의 비밀2 - 龜邦과 鬼邦

기사승인 2020.05.01  15: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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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海 金 昌周 


한국고대문자연구소장
한국백제문화연구소 소장
동아시아옥문화연구학회 사무총장

 

양쯔강을 타고 한반도로 온 김탕의 왕조들이 연 금관가야

중국 대륙 왕망의 신나라는 15년 만에 사라지고, 왕망을 도왔던 휴도왕의 후예들은 중국 본토에서 신나라 멸망 직후 한반도로 이주 하였으며, 중국에는 후기 한나라 시대가 도래 한다.

양쯔강을 타고 한반도로 온 세력인 김탕의 왕족들이 왔다는 김해(금관가야)에 대하여 알아보자.

김해시는 구지봉의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거북이 지명이 유난히 많고, 유명한 구지가(거북아~거북아~머리를 내어 놓지 않으면)의 설화가 살아 숨 쉬는 곳으로, 가야(가라, 가락국)로 불리며 약 2천여 년 전 남해안 일대에 철기 문명으로 현재 중앙아시아 대륙의 중심부를 달리던 기마민족의 철기 및 마구 유물들이 출토되는 곳의 중심지이다.

허황후의 선조들은 아유타국의 반란으로 중국으로 건너와 정착하게 된다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는 본래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아유타국에 반란이 일자 그의 선조들이 중국의 사천성 보주시 일대로 건너와 정착하여 살았고, 중국에서 ‘허씨’라는 성과 함께 장군의 벼슬을 받고 살다가, 왕망사건 때 허씨장군 일가가 신나라를 도운 것으로 인하여 일가가 역적으로 몰렸고, 더 이상 중국에서 살 수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휴도왕의 후예 김탕은 왕망정권이 폐망하자 사천성 일대에서 먼저 장강을 타고 한반도로 건너와, 김수로왕으로 불리며 김해(금관가야)에서 왕권을 거머쥔 뒤 사천성의 같은 동네에 살던 허씨장군가의 공주 허황후를 사천성 보주시에서 현재의 김해로 피신시켜 아내로 맞아 김해일대에 금관 가야국을 건설한다.

김수로왕과 허왕후 사이에서는 10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를 낳았다.

허황후는 인도 아유타국의 대표 상징인 물고기 두 마리 표식의 쌍어문과 붉은 돌로 만들어진 파사석탑을 가져왔다 전해진다.

은하사 삼두귀의 모습,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sws8007님의 블로그

그런데, 신어산 은하사에 가면 머리가 셋 달린 三頭龜(삼두거북이)가 있다.

삼두거북, 구지봉, 구지가 그리고 수많은 거북이 지명들은 중국대륙에 얽힌 고대사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 관한 고대사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를 가지고 있다. 약 3천여 년 전 단군조선말기부터 감숙성, 청해성 일대의 중심 도시인 현재의 오르도스지역을 중국인들은 귀방(鬼邦)이라 하였다.

당시 귀방이라는 곳은 중국 화하족에게는 아주 무섭고 섬뜩한 지역으로, 현대에까지도 가까이 하지 않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귀방(鬼邦)이라는 글자 그대로 정말 귀신이 출몰하는 지역일까?

귀방(鬼邦)이라는 글자는 원래 "龜邦 = 거북이 나라"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龜邦"(거북이 나라)이 "鬼邦"(귀신 나라)로 바뀐 것일까?

춘추 전국시대를 지나며, 중원대륙을 진나라 시황제가 통일하기 전부터 흉노족의 기마부대가 만리성을 내려와 중원대륙을 자주 침공하였을 때부터이다. "龜邦"처럼 중원대륙에 한족(화하족,China)들이 거처하던 지역은 ​"거북이"가 들어가는 지역은 단 한군데도 없었다.

​바로 한겨레, 배달겨레로 불리는 우리 동이족들이 살던 지역 이름에는 모두 "거북이" or "龜"가 들어간다. 중국 공자 이후 ,동이족을 핍박하고 역사를 말살하기 위하여 "龜"를 귀신을 상징하는"鬼"로, 숫자를 상징하는 "九"로 바꾸어 왜곡하였던 것이다.

동양에서는 동서남북의 네 방위에서 북쪽 또는 북쪽을 수호하는 수호신을 현무(玄武)라 하였다. 거북과 뱀이 한 몸을 이룬, 저승과 이승을 가르는 차원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로서 등껍질은 매우 단단하여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고 머리로는 독과 안개를 뿌려 적의 행동을 봉쇄하는 특성을 지녔다고 한다.

옛날 군대의 방패에 현무의 형상을 새기거나 현무의 몸 색깔인 검은 칠을 많이 했다고 하는데 거북은 바로 배달겨레인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대표적 기형이며, 거북이 이름이나 형상이 존재 하는 곳은 바로 우리 땅이라는 증거가 된다.

고구려 초기 시절부터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조, 이씨조선까지 우리 겨레는 우리의 말은 갖고 있었으나 단군 조선이 멸하면서 중국의 한자를 빌려다가 글로써 차용하는 바람에 같은 음이면 무조건 함께 사용하며 한자가 뒤죽박죽이 되었고, 현대에 이르러 초기 이두 연구 결과물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발음을 나타내는 "소리"가 아닌 "뜻"으로 잘못 해독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여 고대어의 해독에 있어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었다.

구려, 구이, 구리 이 모든 "구"가 "龜"이다. 우리겨레 가야, 신라, 백제 등 후대 모든 역사의 비문의 받침돌이나 모든 무덤, 사서에 거북이가 등장하는 이유가 이러한 연고이다.

이제, 대륙과 한반도를 넘어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가보자. 

-3편에서 계속-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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