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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립의 기억으로 그려진 계연수 초상화는 진짜였다

기사승인 2020.06.10  12: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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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연수 선생은 이유립의 스승이다.  계연수 선생이 편저한 환단고기 초간본(1911년)을 받아서 세상에 널리 알려 인류와 한민족의 역사에 공헌한 인물이다.  이유립 선생은 해방후 남한으로 내려와 대전에 정착하며 '양종현'과 '오선일'이라는 그림을 잘 그리는 제자를 만나게 되어서 계연수 선생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다. 계연수 초상화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두 그림이 이 두 사람에게서 그려진 것이다.    

계연수 초상화 (좌,오선일 그림, 우 양종현 그림)

“(강화도 마리산) 커발한 개천각에는 붓으로 그린 계연수의 초상화도 있다. 계연수 초상화가 나오게 된 연유를 전씨는 “계연수 선생을 비롯해 전해오는 초상화나 사진이 없는 분의 얼굴은 대전에서 ‘오일룡’이라는 필명으로 축구 만화를 많이 그린 만화가 오선일(吳宣日)씨가 그렸다.


 오선일씨는 이유립 선생에게서 환단고기를 공부한 적이 있어 이 선생의 기억을 토대로 계연수 선생의 초상화를 그렸다”라고 말했다. 오선일씨는 “고등학생 때 나는 친구인 양종현씨와 함께 이유립 선생에게서 환단고기를 공부했다. 그때 내가 받은 호가 ‘단우(檀宇)’인데 ‘단석’이라는 호를 받은 양종현씨와 함께 계연수 선생 등의 초상화를 그렸다”라고 했다.“  - 신동아 2007년 9월호 제 2부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中 -

<계연수 선생 초상화를 그린 양종현,오선일 씨는 친구사이다 >

 이유립 선생은 그림에 자질이 있는 제자 두 학생에게 자신이 직접 보았던 계연수의 몽타주를 열심히 설명했고 이를 들은 학생들은 초상화를 제대로 그려보려 노력했을 것이다. 당시 만화가 지망생이었던 오선일씨(후 오일룡이라는 필명으로 유명 만화가가 됨)가 그린 초상화는 강화도 마리산 개천각에 까지 모셔져 있는 것을 보면 꽤나 실물과 비슷하게 그린 초상화로 추정된다. 

그의 사진을 계연수 선생 초상화와 비교해보자. 수안 계씨로써 일제 강점기 계연수 선생과 동시대를 살았던 독립운동가 한명을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계봉우다. 그도 역사학자다. 국사학자·국어학자·민속학자·교육자·언론인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계봉우(1880~1959)의 유해가 2019년 4월 22일 카자흐스탄에서 6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유해 송환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참여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95년에야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 文대통령, 해외 독립유공자 유해봉환 > 황운정,계봉우 지사 유해 봉환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알려진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다. 이유립 선생이 그를 알았거나 그의 사진을 알았을 가능성은 없다. 

계연수 초상화 (좌, 오선일 그림/ 우,양종현 그림), 계봉우 선생 사진(맨 우측) 

이목구비와 얼굴형이 거의 똑같다. 그림을 그리는 전문가에게도 같은 평가를 받았다. 눈과 코와 입과 얼굴형 등을 따로 따로 비교를 해보았는데 계연수 초상화와 계봉우 선생이 거의 같다고 한다. 

계연수 (1864년 ~ 1920년)  계봉우 (1880년∼1959년)  계봉우 선생과 계연수 선생의 나이는 16살 차이가 난다. 수안 계씨는 현재 6천명 정도가 현재 생존해있다. 수안 계씨가 소수성씨이고 계연수,계봉우 둘다 역사편찬에 기여했음을 볼 때 가까운 친척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추정해본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닮은 모습을 할수가 없을 것이다. 

이와같이 이유립 선생이 제자인 양종현과 오선일에게 계연수 선생의 모습을 그리라고 하여 나온 초상화가 놀랍게도 같은 시대, 수안계씨의 독립운동가 얼굴과 거의 똑같음을 살펴 보았다. 이는 수십년이 지났어도, 당시 13,14살의 청소년이었던 이유립이 직접 만나고 가르침을 받고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스승 계연수의 얼굴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유립은 계연수 선생을 보았고 이를 그대로 그리라고 하였다. 위서론자는 아직도 계연수는 가상인물이고 이유립은 계연수를 만난적도 본적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초상화의 입증을 통해서 이유립 선생이 증언한 계연수 선생의 생애와 독립운동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사실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해학 이기선생과 계연수 선생으로 이어지는 단학회의 독립운동도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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