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라국의 위치 (한반도 가야에 비정될 경우 일본의 정벌지가 되어버린다)
합천 옥전 고분군에서 다라국 가야 장군 무덤이 발굴되었다고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있다. 처음 옥전 고분이 발굴될 때에도 신문지상에 "다라국의 실체가 드러나다" 라고 난리가 났다. 합천 옥전고분 발견 당시의 제목이다. 우리의 고대사는 일본의 정벌 대상으로 전락되는 수모인지를 아는 이가 없는 것인가? 사실이라면 할 수 없지만 전혀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합천이 왜 다라국인가? 왜 다라국으로 비정된거가? 합천의 옛 지명이 '다라'였을까? 지난 1992년 합천의 玉田 고분 발굴의 결과를 놓고 조선일보(1992년 ,2.26일) 지상 논쟁에서 우리 역사학자는 [옥전고분은 임나 10국의 하나인 다라국 유적]이라는 논지를 폈다. 그럼 그 논리는 어디서 나온건가?
네이버 다라국 검색 화면 |
국립중앙박물관이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말까지 가야 특별전시를 할 때 아래의 가야 연도표의 내용이 있었다. (부산시립박물관에서 같은 전시를 할 때는 연대표 자체를 전시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 가야본성 가야특별전시 연대표 |
▶369년 가야7국(비사벌,남가라,탁국,안라,다라,탁순,가라) 백제,왜 연합의 공격을 받음(일본서기) -
4세기의 가야 역사 연대표다. 여기에 369년조 기록이 있다. 일본서기 기록이다.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당연히 없는 기록이다.
4세기(369년)부터 6세기까지 200년간 야마토왜가 임나일본부를 가야땅에 설치했다는 것이 일본이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에서 가장 중요한 연대다. 바로 369년에 가야7국(임나7국이라 부름)을 쳐부쉈다는 얘기다.
다라국은 369년 야마토왜가 점령하는 임나7국(가야7국)의 지명에 들어 있다. 그러니 식민사학자,일본학자라면 당연히 이 다라국을 한반도 남부에서 찾고 싶을 것이다. 합천이 다라국이라면 우리는 일본의 신공여왕에게 정벌 당하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다라를 포함한 7개 지명 모두 한반도 남부에서 찾아서 확정시켜버리면 빼도 박도 못하게 되니까 말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와 이번 가야본성 특별전시의 지도를 비교해보았다. 이번에 다라국을 확고히 비정했다.
일본 역사교과서 : 임나일본부를 표시한 일본의 역사교과서 |
1949년 임나흥망사를 쓴 스에마쓰는 다라를 합천에 비정했다. 거기에는 합천 옥천 고분이 있다. 그런데 가야사를 연구하는 우리 학자들도 같은 비정을 한다. 누구라고 하면 구차할 정도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일본학계 (식민사학) : 다라국 → 합천으로 비정
☞한국학계 (주류사학) : 다라국 → 합천으로 비정
다라라는 지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합천에 비정한다. 비슷한 지명도 없다. 그런데 거기에 비정시킨다. 확정이란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다라국은 일본에 있었다.
그럼 '다라'라는 지명은 어디에 있나 ? 現 일본 사하현에 있다. 그 지명의 흔적이 무수히 남아 있다. 검색되어서 나오는 것만 나열해보자.
☞多良岳(다라악) : 일본 사가현 후지쓰 군 다라조 다라多良
☞大字多良(대자다라) : 일본 사가현 후지쓰 군 다라조
☞太良町(다라조) : 일본 사가현 후지쓰 군
구글 지도 검색 |
후지쓰(藤津) 郡의 아리아케우미 서안에 위치한 이 지역 일대에는 太良(tara),多良(tara), 田原( tahara) 들이 연이어 나오고, 마침내 多良中山과 多良山(일명 多良岳)이 남쪽을 가로막고 섰다. 다라多羅, 즉 다라多良(tara)는 더 정확히 말해서 지금 다라촌(多良村)으로 불리워지고 있으며 다라산(多良山(岳)의 동쪽 기슭에 위치한다.
지도를 보면 다라산多良山(岳)의 동쪽 기슭에 다라多羅, 즉 다라多良(tara), 다라촌多良村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물론 좀 더 면밀하게 연구하고 찾아보면 일본의 다른 지역에서도 '다라'가 나올수도 있고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결론은 무엇인가? 한국에는 '다라'가 없다. 일본에는 '다라'가 많다. 이렇게 명확하게 비교되는 지명이 있는가 싶을 정도다.
학자들은 눈이 멀었나? 무엇이 학자의 눈을 가리나? 저 지명이 보이지를 않나? 찾아보지 한번도 않은건가? 구글 지도 검색하면 나오는 지명이 일본에 수두룩하다. 그런데 왜 나오지도 않는 지명을 한반도에서 찾아서 비정해야 속이 시원한가?
고대 일본의 성씨 1182개를 기록한 신찬성씨록 여기에 기록된 임나 관련 성씨. 여기에 여러 임나 관련 성씨가 있다.
일본의 양심있는 역사학자는 가야가 큐슈를 지배했다고 말한다. 영향력을 뻗쳤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가야는 해상으로 나갔을 것이고 대마도를 지나 그 아래쪽인 큐슈에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기록도 있고 유물유적도 있다. '다라'라는 지명이 나오는 그곳들에서 가야 유물들이 나온다. 이를 연구해봐야 하지 않은가?
출처 : 환단고기 북콘서트 가야편 |
출처 : 이진아 선생 블로그 |
일본식 한자로 ‘한국악’이라 쓴 팻말은 규슈 남단인 가고시마현 기리시마 인근 연산지대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가라쿠니다케’에 있다. ‘가라’는 ‘가락국’(가야)를 지칭하는 일본어다. ‘쿠니’는 ‘국가’라는 뜻이고 ‘다케’는 험난한 산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가라쿠니다케’라고 불린 이 산은 정확히 ‘가락국산’이라는 뜻을 갖는다. 가라쿠니다케는 규슈에서도 남쪽 깊숙한 곳에 위치한다. 쓰시마 건너인 규슈 북부 해안지대와 가야의 연관성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게 지금 상황이다. 그런데 규슈 남부 깊숙이 자리 잡은 산에 도대체 왜 ‘가락국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이진아 선생님 블로그 참고)
다라국만 잘 연구해도 가야가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가야를 한반도 남부에만 위치시키는 것 자체가 역사왜곡이 될 수 있다. '임나'는 일본열도에 있었거나 대마도라는 민족사학의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는 다른게 아니다. 합리적 이성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이 하는 이런 어떻게 보면 조상들이 일구어놓은 역사를 찾지는 못할만정 그 나라를 팔아먹는 행태를 지금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지금까지 몰랐기에 국민들이 가만히 당하는 것이지 이것을 알았다면 지금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실이니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6월 '가야사'를 연구하자고 하니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깜짝 놀란거다. 안그래도 학계 카르텔로 가야=임나라는 등식을 조용히 잘 형성하고있는데 그걸 들추어내고 들쑤셔놓으니 말이다. 정치가 개입한다고 난리다. 그들이 왜 그 난리를 치는지 아는가? 기득권,조용히 만들어놓은 그들만의 카르텔,임나=가야라는 일본학자와 함께 만들어놓은 임나일본부설이 깨질까 두려워서다.
아니라면 왜 이런 명확한 내용을 놔두고 합천을 다라국에 비정하는가? 학자는 양심이 없는 것인가? 이성이 없는 것인가?
합천의 가야 유물은 합천가야 유물이라고 하고 좀 더 연구하면 될 일이다. 그걸 다라국이라고 한다고 빛이 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합천군은 이런 사실을 면밀히 검토하고 강단 주류사학자 뿐 아니라 이 분야 민족사학 연구자들을 모아서 이성을 가지고 추론하여 올바른 결론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문재인 정부는 이대로 가야사 연구에 국고를 투입하여 가야사를 회복하려고 하는 목적은 좋으나 그 국고가 일본의 침략이론인 '임나일본부설'이 확고해지는데 쓰여질 수 있음을 지금이라도 깨닫기 바란다. 지금처럼 그대로 두고 방치한다면 이 정부 최악의 역사적 과오가 될 것이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