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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 호칭 매금으로 광개토태왕비문 판별 가능하다

기사승인 2020.06.29  02:3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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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금>이란 고구려 왕이 신라왕을 부르는 호칭

중원 고구려비(79년 발견 81년 국보지정)에 실린 매금

중원 고구려비에 새겨진 광개토대왕비보다 조금 후대에 세워진 중원고구려비에는 "매금"이라는 명칭이, 무려 6 번이나 등장한다. 원 고구려비에 등장하는 신라매금,동이매금,매금 명칭 6번 나온다

울진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 1988년 발견

비문의 내용은 이 비가 세워지기 얼마전에 울진지방에서 불을 지르고 성을 에워싸는 등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여 신라 중앙정부에서 대군을 동원하여 이 사태를 진압한 뒤 그에 대한 사후 처리로 모즉지매금왕(법흥왕)과 신료 13인이 육부회의를 열어 칡소(얼룩소)를 잡는 등 일정한 의식을 행한뒤 현지 관련자들에게 장60대와 100대등의 형을 부과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방민에게 주지 시킨다는 것으로 율령비의 성격을 띤다.
울진봉평비에 실린 모즉지 매륵왕 부분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된 신라매금
광개토태왕비에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광개토대왕 대에, 신라 매금이 고구려에 직접 와서 조공했다는 내용이다. 학계에서는 이 "매금"이, 신라의 왕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제3면 2행)
遂分爲郡安羅人戌兵昔新羅寐錦未有身來000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00新羅寐錦00僕勾 
<계연수 1898년 무술등본>

이와 같이 광개토대왕비,중원(충주) 고구려비,울진봉평신라비 등 발견된 세 비석에는 신라왕을 뜻하는 매금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그러나 신라를 다룬 기존 사서에는 매금이라는 용어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매금은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고구려 장수열제 기록에서 나온다.

(장수홍제호태열제 재위시 413~491) 신라의 매금과 백제의 어하라와 함께 남평양에서 만나서 공물 바치는 일과 국경에 주둔시킬 병사의 숫자에 대하여 약정하였다. 又與 新羅 寐錦 百濟 於瑕羅 會于 南平壤 約定 納貢 戌兵之數.

신라왕은 매금寐錦이고 백제왕은 어하라於瑕羅다. 백제왕을 어하라라고 부른 것은 고주몽이 소서노를 책립하여 부른 것이 최초 기록이다. 또한 중국의 [북사][주서 백제전] 등에서도 백제는 자기들의 왕을 어라하於羅瑕라고 부른다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백제 어라하와 대비되는 신라 왕의 호칭이 매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비문에만 나타났던 <매금>이 무엇인지 <환단고기>를 통해서  정확히 알게 되엇다. 

또한 매금은 고구려의 태왕이 신라왕을 부르는 호칭이어서 신라 자체의 사서에는 나오지 않는것이다. 그러므로 광개토태왕비문 탁본 중에서 이 부분을 <매금>이라고 적은 탁본이 좀더 정확한 탁본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아래 3개의 탁본중에서는 매금을 정확히 매금이라고 적은 <미즈타니 탁본>이  그중에는 정확하다. 이렇게 하나씩 살펴보면 수십가지 탁본중에서 정확도가 높은 탁본을 고를 수 있을 것이다.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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