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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일제, 왜 조선사에서 단군을 지웠나?

기사승인 2020.07.07  18: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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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림 (사) 미사협 공동대표 (사) 대한사랑 수석본부장

대한민국의 국민들의 대부분은 한국사의 시작을 이야기할 때 단군신화를 이야기하거나 단군을 부정하며 위만조선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과거 수 천년간 그렇게 인식되어 내려온 줄 안다.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의 초대단군 어진

어떤 이들은 종교적 관점으로 단군을 이단, 우상이라고 적대시 하며 단군상의 목을 자른다. 이단이란 동질의 문화 속에서 정통적이고 핵심적인 교리를 자기 위주로 해석 하는 일명 사제교리를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단군은 기독교 문화에서는 하나님과 동질의 존재가 아니기에 이단이 될 수도 없고 종교적 교리와는 상관이 없다. 그리고 한민족 역사 속의 단군조선을 건국한 나라 임금이기에 우상이 될 수도 없다. 

목이 잘려나간 단군상

구약은 누구나 알다시피 이스라엘의 창세 역사서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아버지격인 아브라함이 등장하는 것과 같이 한국의 역사에서는 단군조선의 건국자이며 국조인 단군이 존재하는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며 기독교 신자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은 직접 작사한  "대황조의 높은 덕"을 보면 "우리황조 단군께서 / 태백산에 강림하사 / 나라 집을 건설하여 / 자손 우리에게 전하셨네 / 거룩하다 의의탕탕 / 대황조의 성덕 거룩하다" 라며 단군을 칭송하고 있다. 국조를 공경하며 하나님을 신앙한 것이다. 

국조를 부정한다면 전 세계는 ‘구약이 세계사였다’는 논리 밖에 안 되는 이스라엘 선민의식의 반영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전 세계 민족과 국가의 개별적  역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즉 미국에 살고 있는 톰(Tom)이 한국에 와서 생면부지인 김씨(氏) 집안에 와서 ‘우리 역사가 오래 되었다. 우리가 당신들 뿌리다. 당신 김씨들 역사는 거짓이니 우리 Tom집안의 역사를 믿어라. 우리가 당신들 뿌리다’라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건국사 그리고 국가를 유지한 기간은 너무 짧아서 전 세계에 어떤 민족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도 없는 조건이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역사는 압박받는 노예로 살았던 민족사였다. 그런 민족이 자기역사와 정신인 구약과 탈무드를 바탕으로 다시 국가를 재건하며 세계사의 영향력 있는 국가가 된 것은 자기 자신의 뿌리역사를 소중히 간직한 이스라엘 민족의 당연의 역사라 평가할 수 있다. 

그런 반면 지금까지 동질의 문화권으로 수천년간 나라의 간판만 바꿔 달면서 이렇게 장구하게 존속한 한민족이 있었던가?  한국사에서 단군이 실제의 역사가 아닌 가공의 역사, 신화의 역사로 취급 받은 적은 언제부터였을까? 단군에 대한 역사단체나 학자들의 논문을 수 십편을 분석하였는데 거의가 다 단군을 이야기하면서 ‘신화(神話)’라는 용어를 밥 먹듯이 쓰고 있다. 지금 인터넷 검색을 해보라.  

용어를 바르게 쓰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정명(正名)이다.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것은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고대부터 삼국시대, 남북조시대, 고려, 조선 시대까지 현존하는 한국사의 사료에는 단군을 ‘신화’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고대 학자와 사가들은 정명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근대 현대 고대사 연구학자들은 이 정명사상을 모르기에 무조건 과거에도 단군신화라고 전해진 것처럼 논문과 역사서에 기록을 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정의를 강조하며 용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분이 있다. 국어학자로서 일본인이 만든 두음법칙을 거부하고 원래 한국어 발음을 강조하였으며 역사의 본질을 꿰뚫어 정확한 용어를 표현하는 것을 강조한 분으로  Marquis Who's Who(마르퀴즈 후즈후)인명사전에 등재된 국어학자인 짐계(斟溪) 려증동(呂增東) 명예교수다. 

려증동 교수 (사진 출처 : 국제신문)

그는 할아버지 老石 려구연(呂九淵 1865-1938)선생으로부터 기개를 이어받았다. 려교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금은 대부분 사용하고 있는 용어인 ‘경술국치’,‘을사늑약’이란 용어를 쓰도록 만든 학자이다. 원래 한국인들이 사용한 용어는 ‘한일합방’, ‘을사보호’였다. 려교수는 일본제국주의 입장에서 표기된 이 용어를 바로 잡았다. 

그는 역사를 쓸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주체’가 누구였는지 강조하였다. 특히 고대사 부분에 있어 단군에 대한 역사에 있어서도 시퍼런 칼날 같은 정명(正名)을 하였다. 현재 단군존재를 부정하며 주류사학자들이 단군신화라는 내용을 즐겨 사용한다. 하지만 려교수는‘신화란 용어는 일본 용어이고 배달말로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해괴한 이야기”란 의미’임을 강조하며 ‘단군사기(檀君史記)’라고 바로 표기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렇기에 지금 단순히 한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신화(神話,myth)’와 ‘단군역사’는 명백히 다름을 알아야 한다. 어떤 분들은 신화란 용어가 중요한 의미라고 주장을 하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언어를 조선사에 가져다가 사용한 일본역사에서의 ‘신화’란 용어의 의미 파악이 중요한 것임을 강조하였다.

필자는 그동안 신라시대부터 남겨진 200여권의 고대사, 근대사 역사서를 분석을 했다. 려교수의 주장대로 한국역사서에는 단군을 ‘신화’로 표기한 역사서는 조선총독부관련 인물과 역사서에 등장하고 있음을 찾아내었고 곧 유튜브와 책자로 엮어 낼 계획이다. 책 한 권 한권 원문을 공개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동안 단군관련 논문들이 얼마만큼 엉뚱하게 인용되었는지도 직접 눈으로 보여 줄 계획이다. 

고려 중후기와 조선시대는 성리학의 영향으로 “기자箕子”가 주목을 받았으며 결국은 그 정통성 확보를 위해 “기자조선”이란 표현까지 역사서에 표기를 시도한 유학자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도 강조의 세기는 달랐지만 첫 표기에는 “단군조선”을 명백히 기록하였다. 

일본은 조선을 강점하기 전에 일본 국내에서 이미 단군에 대한 정의는 결론을 짓고 조선사 틀을 잡았다. 일본이 조선사를 기술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단군제거’였다. 
  
나카 미치요(那珂通世1851~1908)는 “朝鮮古史考 (史學雜誌 5~4, 1894)11)를 통해서 단군전설을 ‘중들이 날조한 망령된 이야기’라고 주장하였으며 이마니시 류(今西龍금서룡, 1875. 8. 15 ~ 1932.5. 20 급사)는“퉁구스족인 부여 종족과 관계가 있는 설화이지 현대 조선민족의 선조인‘韓’種族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오다 쇼고(小田省吾·소전성오)는“묘향산의 산신연기와 평양선인의 전설이 혼동되어 산신 즉 단군이 이 지역에 내려와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 칭하게 된 것, 이것은 필시 어떤 승려에 의해 조작되었을 것”이라 주장하였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주장에 머물지 않고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배하면서 조선인의 신민화를 위해 만든 역사교과서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며 이러한 내용은 지금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충격인 것이다. 

일본의 조선인 역사교육은 1919년 3. 1운동을 계기로 적극적인 대응으로 진행된다. 일부 사학자는 3.1운동을 계기로 일제가 조선인에 대한 유화정책을 썼다고 주장을 하나 기실은 조선인에 대한 학교 대중화를 통한 강력한 식민사관 주입이 역사적 사실이다. 1920년 일본에서부터 기본 틀이 만들어져 있던 조선사 고대, 중세, 근세사 교육을 아동부터 고등교육 이수자들에게 까지 깊이 세뇌를 시켰다.

그들이 만든 1920년 최초 교과서 尋常小學日本歷史補充敎材敎授參考書 교사교육매뉴얼 및 보통학교국사교과참고서普通學校國史敎授參考書(朝鮮事歷敎材)(1923년 3월)에는 단군조선에 대한 교육 매뉴얼을 확고하게 명시하여 진행하도록 하였다.

尋常小學國史補充敎材敎授參考書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교수참고서) 

“조선반도에 나라를 세운 것 중에 가장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것 은 앞서 적힌 기자(箕子)이지만 그보다 더 이전에 단군(檀君)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왕왕 믿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여기에 한 마디 해야 한다’… ‘이조시대 유명한 학자로서 그 전설의 망탄불계(妄誕不稽)을 믿기에 족하지 않다는 것 또 그 전설이 승려의 손으로 날조되어진 것이라고 논하는 것이 적지 않다. 근래 내지의 학자 역시 모두 동일한 결론을 내린다. 따라서 본서는 이 전설을 채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규정과 함께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 내의 조선인 학자들과의 ‘단군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후 금서룡의 ‘단군신화’란 용어를 대중화 시켜 나간다.

일본이 단군조선을 없애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군문헌이 부족해서도 아니며 고고학적 증거 자료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들이 조선인에게 심고자 했던 역사관은 일본천황중심의 “황국사관(皇國史觀)”이었다. 일본 건국사의 첫 뿌리 되는 신무천황(神武天皇 진무텐노)가 그 일본과 조선역사의 기원으로 인식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의 국조신 천조대신과 단군이 같은 문화라는 것을 초기에 강조를 하고 했다. 하지만 조선인의 뇌리 속에 깊히 새겨진 단군에 대한 역사인식은 변화가 없을 정도로 강인하였기에 결국은 단군제거로 방향을 강하게 밀고 나간다. 

단군의 조선 건국사는 bce 2333년인데 반해 신무천황의 건국역사는 고작 bce 660년의 건국역사이기에 황국사관정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인물이 단군이었던 것이다. 기자도 bce 1100녕 경의 역사이기에 일본 황국사관입장에서는 꺼림직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중국인이었다는 논리가 성립되기에 중국인의 지배를 받은 고조선이라는 논리를 내세울 수가 있어 기자는 광복 후에도 단군 부정카드의 대안으로 어느 정도 활용되었다. 그러면서 부각시킨 인물이 단군조선 삼한의 한 쪽 날개였던 번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기준(교과서의 '준왕')의 은혜를 배신하고 쫒아 내고 그 지역을 차지한 연나라 위만이었다. 위만정권은 bce194년 시작되기에 당연히 신무천황보다는 짧은 역사였기 때문이기에 일본천황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시기였고 또한 지나의 종족이기에 조선건국사를 부정할 수 있는 좋은 논리제공 인물이 위만이었다.

이렇게 조선인들에게 한국역사의 단군조선사를 부정하며 일본은 조선사학회나 청구학회 등의 조선총독부 연관 역사단체들을 통해 “ 조선의 고대사는 북쪽은 기자와 위만조선, 한사군으로 지나(支那)의 영토였으며 한반도 남쪽은 일본의 영토(任那日本府)였다”라는 것을 교육시켰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이 배운 역사와 똑같은 것이다. 

좌측 노란색 부분에 지나영토, 일본영토란 표기가 있다

우리가 배운 단군신화는 결코 실증사학의 결과도 아니며 고대로부터 우리겨레가 인식한 역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에서 이미 만들어졌고 조선사편수회가 체계화한 “조선사”의 골격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편찬이전에 이미 자신들이 만들 조선사를 1920년 12월부터 1944년 3월까지 철처히 교육시켜 놓고 조선의 영토를 떠났다. 하지만 광복 후에도 경성제대에서는 일본학자들이 스승이라는 명분으로 드나들며 그들이 만든 조선사를 체계적으로 교육 시켰으며 현재 그 학맥인맥이 대한민국 역사를 주도하며 수 많은 카르텔이 되어 대한민국의 갑의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들은 가려낼 방법은 아주 간단하며 그들이 스스로 그 틀을 제시해 놓았다. 그들은 일본인이 만든 조선사를 실증사학이라 주장하며 문헌과 고고학을 바탕으로 역사를 연구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광복 후 그들이 만든 조선사의 기본 틀이 고고학과 문헌에 의해 수없이 흔들리며 붕괴되었다. 고조선건국, 청동기 시대, 기자, 위만, 한사군, 임나 등에 대한 그들의 고유한 주장이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을 정도로 고고학과 문헌사를 통해 많은 시민들에 의해  잘못되었음을 지적당하고 있다.      

한국사의 주체는 한국인이다. 조선을 강제 지배하고 영원한 일본의 식민국가로의 건설을 꿈꾸었던 일본학자들이 식민지 조선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바로 잡아 주었다고 믿는 자체가 바보들의 발상 아닌가?

특히 단군이란 존재가 일본의 사학자들이 가장 없애고자 한 존재였다는 것은 자명하다.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단군의 역사를 신화로 강조하면서도 자국사로 수용하며 기자조선을 내세우고 있다. 최근 중국학계에서 ‘고조선은 주나라의 지방정권“이란 주장은 과거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에서 가르치던 조선사 내용과 100% 일치한다.

역사는 큰 틀에서 반복한다. 역사를 잃은 민족은 역사에서 제거되어 사라졌음이 교훈임을 누구나가 배웠을 것이다. 주변국 중국과 일본이 한국의 고대사를 다시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너무 불안하다. 주변국은 그 상황의 미래를 점치고 역사적 대안을 미리 만들어 놓기 위해 한국 고대사 침탈을 진행하고 있다.

작금의 한국사는 단순히 역사학자들의 전유물로 방치해 놓고 일방적으로 세뇌 받았던 조선총독부의 조선사가 아니어야 한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류가 세계 대세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사는 현대사도 중요하지만 현 한중일 역사전쟁 속에서 한국 고대사가 한국의 미래사의 영토와 주변국의 영향력을 좌우하게 될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명백하다. 그 중심에 ‘단군’과 ‘(옛)조선’이 있다. 

▲  <한겨레21> 제1167호 표지. : 단군 어진을 표지로 하며 이를 사이비 역사,유사역사로 표현하고 있다. 일제의 '단군신화시하기','단군제거하기'는 지금 이시점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조선총독부시절에 만들어 놓은 역사논리와 맞지 않는다고 본래의 한국사를 ‘유사역사’이라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국사(國史)를 맡겨 놓을 것인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역사 침탈에 묵언으로 방관, 동조로 일관하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 역사의 미래를 온전히 맡길 것인가?

봉오동,청산리 승전 100주년인 경자년, 100년전 우리 조상들은 수없는 전쟁속에서 영토를 지키려 목숨을 버렸건만 우리는 그런 희생속에서도 아직 역사광복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100년 후 우리들은 이 역사전쟁에서 승전보를 올려 우리 조상들에게 환인,환웅,단군의 뿌리 역사를 온전히 회복해드려야하지 않겠는가?    

 

 

박찬화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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