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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동방 예악문화의 고향

기사승인 2020.08.07  13: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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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제정일치 국가였기 때문에 일찍이 예악이 발달했다. 만주 요령성에서 BCE 2000년경 것으로 추정되는, 궁중 음악이나 제사 의례에 사용된 악기인 석경石磬과 편종이 출토되었다. 또한 두만강 유역에서 BCE 2000년 전반기의 뼈피리가 발견되었다.

두만강 유역에서 발견된 뼈 피리와 『악학궤범(樂學軌範)』의 젓대 삽도
함경북도 선봉군 굴포리 서포항 초기 청동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새의 다리뼈로 만든 피리. 길이 18cm. 13개의 소릿구멍이 나 있어 피리의 형태를 닮았는데, 조선시대의 『악학궤범』에 보이는 젓대[대금(大琴)]의 소릿구멍의 개수와 일치한다. 

                            홍산문화 오공금

그런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BCE 3000년경 배달 시대의 유적인 홍산문화에서 고조선 것보다 더 오래된 석경이 출토되었다. 홍산문화에서는 오공금五孔琴이라는 옥으로 만든 악기도 발견되었다. 홍산문화와 고조선 유적에서 출토된 뼈피리, 석경, 오공금 등의 악기로 볼 때, 동방 한민족은 동북아에서 가장 먼저 예악禮樂 문화를 누린 민족이다.

현대인이 유행가를 즐겨 부른다면, 고조선 사람은 제천가를 즐겨 불렀다. 매년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릴 때 나라에 큰 축제를 열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상제님의 덕을 찬양하며 <어아가於阿歌>라는 제천가를 불렀다. 감탄사 어아於阿로 시작되는, 2세 부루단군이 지은 이 노래는 한마디로 삼신을 맞이하는 노래이다. <어아가>는 후일 고구려 시대에 이르러『 참전계경參佺戒經』 속에 수렴되었다.『 참전계경』은 고구려 9세 고국천열제 때 재상인 을파소가 백성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지은 경전으로, 신교 문화의 3대 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고조선 시대에는 사람들이 악기도 즐겨 다루었다. 공후箜篌(서양 하프 모양의 현악기)라는 악기를 연주하며 부른 노래인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가 널리 퍼져나간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公無渡河(공무도하) 임아 물을 건너지 마오
公境渡河(공경도하) 임은 그예 물을 건너셨네
墮河而死(타하이사) 물에 빠져서 돌아가시니
當乃公何(당내공하) 가신 임을 어이하리오

 고조선에서 흔한 악기였던 공후는 BCE 106년쯤 중국 한나라에 전해졌다. 고조선은 한마디로 동방 예악 문화의 고향인 것이다.

참고 :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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