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명을 이루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문자의 사용이다. 고조선 이전에 배달을 건국했을 때 우리 민족은 이미 문자생활을 영위하였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 환웅천황께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사슴 발자국 모양)의 글로써 천부경을 기록하게 하였다”라고 한 것을 보면 배달 시대에 녹도라는 문자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3세 가륵단군이 새 글자를 만들기 전, 고조선 시대에 있었다고 하는 진서眞書라는 상형문자가 바로 녹도문으로 여겨진다.
BCE 2181년에 가륵단군은 그 진서가“ 해독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라고 하며,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였다『( 단군세기』,『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이로써 고조선의 새로운 문자, 가림토加臨土가 탄생하였다.
그런데 가림토 또는 가림다加臨多라고 불리는 이 글자의 모습은 조선 세종 때 만든 한글과 그 형태가 같거나 흡사하다. 특히 모음 11자는 똑같이 생겼다.
최근 중국 곳곳에서 은나라 갑골문 이전의 문자로 추정되는 상고금문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을 연구한 중국 학자 뤄빈지駱賓基는 자신의 저서『 금문신고金文新攷』에서‘ 상고금문은 한민족의 언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문자’라고 밝히면서, 그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주체를 동방 조선족이라고 단언하였다(김대성,『 금문의 비밀』).
상고금문이 은나라의 갑골문, 주나라의 대전大篆, 진나라의 소전小篆을 거쳐 지금의 한자로 완성된 것을 볼 때, 한민족의 문자가 바로 중국 문자의 원형인 것이다.
- 환단고기 역주본(상생출판)에서 발췌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