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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서 손기정 우승 축하해준 안중근 사촌 안봉근

기사승인 2020.08.09  06: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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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손기정 선수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다. 일제 식민지 시대였지만 한국인들에게는 큰 기쁨을 주었다. 


올림픽 경기가 끝난 후, 베를린 현지에서도 축하파티가 있었다.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손기정·남승룡 선수 일행은 조선인들끼리만 몰래 모인 자리에 참석하였다. 베를린의 한 두부 공장에서 우승 파티를 한 것이다. 이 두부 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바로 안중근 의사의 사촌형 안봉근이었다. 안봉근 선생은 이 공장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을 후원했다고 전해진다. 

일제 시대인 1936년 독일 베를린의 한 두부 공장에서 동양인 남자 10여명이 김치와 두부를 놓고 '축승회(祝勝會)'를 열은 것이다. 축하하자고 모였지만 분위기는 가볍지 않았다.  후에 손기정은 그때 "두부 공장 벽에 걸린 태극기를 보고 전율했다"고 자서전에 적었다. 

1910년 3월 9ㆍ10일께 뤼순감옥에서 빌렘 신부(안의사 맞은 편)와 면회를 갖고 있는 안중근 의사. 주위에는 일본군과 간수들 5명이 안 의사를 둘러싼 채 앉아 있고, 왼쪽에는 안 의사의 두 동생 정근ㆍ공근 형제가 함께하고 있다.

안봉근의 삶은 대중에게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또오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를 위한 마지막 성사를 집전하기 위해 여순 감옥에 갔던 빌렘 신부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결국 조선 선교지에서 쫓겨나 프랑스로 추방되게 되었다. 이때 빌렘 신부는 안중근의 사촌인 안봉근의 독일유학을 주선해 함께 조선을 떠났다. 그후 안봉근은 베를린에서 정착하여 독일사람과 결혼했다. 그러나 그는 나치에 의해 추방되어 이탈리아로 갔고 그곳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베를린 칸트스트라세 안봉근의 자택이 있던 곳 (사진= 한문화타임즈)

베를린 칸트스트라세 안봉근의 자택이 있던 곳 (사진= 한문화타임즈)

기자는 2019년 4월 유덕고려학우회의 사무실과 안봉근의 자택이었다던 베를린 칸트길(Kantstrasse)을 직접 가보았다. 현재 이 건물은 옛 서베를린 중심가 인근의 칸트스트라세에 있는 6층 주상 복합 아파트다. 안봉근 선생의 자택이었던 곳에는 동남아 레스토랑과 카지노장이 나란히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건물만 지나는 거리에 갤럭시 노트 10 대형광고판이 있었다. 공사장 바깥을 대형광고판으로 삼은 것이다. 어떻게 이곳에 광고를 하게 된 것일까? 

1936년 일제 식민지의 설움 속에서의 축하파티가 있었다면 80여년이 지난 그곳의 흔적 위에 한국회사의 대형광고판이 서 있는 모습에 괜한 감동이 일어났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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