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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성 질병을 대비하라

기사승인 2020.08.30  0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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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이 유독 길었던 장마로 인명,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있을 때, 인도 서부지역 뭄바이(Mumbai)에 47년 만에 하루동안 가장 많은 비가 내려 도시의 많은 부분이 침수되고 산사태가 있었다. 가장 가난한 비하르주에서는 800만명이 홍수 피해를 입어 어려운 상황이다. 

인도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의료 스스템도 취약하다. 지금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가가 350만명을 넘어서고 있고, 사망자는 6만명을 훌쩍 넘었으며, 확진자는 미국, 브라질에 이어서 3위이다. 

인도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거대한 병란으로 어려움을 겪는 과정속에서, 기후 재난으로 발생한 도시 복구와 이재민을 구조해야하는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태풍, 홍수, 화산폭발, 쓰나미, 폭염 등 전세계에 35,000여건의 자연재해가 있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자연재해는 '홍수'다. 

특히나 홍수로 인한 피해는 홍수 이후에 기아와 전염병이 확산되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홍수가 지나간 자리에는 수인성 질병이 찾아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인성 질병은, 인도 뱅골지방의 오랜 풍토병이었던 콜레라다. 

콜레라가 풍토병에서 벗어나 유행을 하게 되는 계기는 영국 동인도 회사가 힌두교와 이슬람 사람으로 용병을 구성하여,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인도의 뱅골지역을 완벽히 영국의 식민지로 삼게 되면서이다.

인도 지역의 풍토병이었던 콜레라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전파가 되기 시작한다. 그 당시 육로의 교통은 발달하지 않다보니, 육로로 인한 콜레라의 전염은 주변 국가 정도였고, 해로(무역로)를 통해서 동남아시아 지역, 중국, 일본으로, 아라비아 반도의 무스카트(현재 오만의 수도)를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동부지역, 북쪽으로는 페르시아만을 건너 이란으로 확산되고, 페르시아(이란)를 넘어 카스피 해로 확산이 되었다. 

(참고 : 아케메네스 왕조의 페르시아를 보통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1979년까지 이곳에 있었던 제국을 페르시아 제국이라고 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는 5번에 걸쳐 러시아와 전쟁을 하게 되는데, 5차 러시아-페르시아 전쟁이 1826년부터 2년간 지속이 되었고, 그리스 독립의 여파로 1828년부터 1년간 러시아와 터키(당시 오스만 투르크)전쟁, 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에서 1830년에 러시아의 지배를 반발하며 11월 봉기가 일어나자 러시아가 침략하게 된다. 

짧은 기간동안 러시아가 동서남북으로 전쟁을 하면서, 콜레라가 러시아까지 확산이 되고, 1830년대에 세계적인 대유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해로를 통해 영국으로 입국하던 배편을 통해 영국에도 콜레라가 발생, 그후에는 아일랜드로, 아일랜드에서 캐나다로, 미국으로, 멕시코로 콜레라가 확산이 되었다.

콜레라는 수인성 질병으로 급성 설사와 탈수로 몇 시간만에 사망할 수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잠복기도 하루 이틀 정도로 매우 짧으며, 잠복기 후에는 설사와 구토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열도 없고, 복통도 없이, 심할 경우 하루 15L의 설사를 하기도 한다.

콜레라로 인해, 인도에 주둔해 있던 영국 군인들은 일주일만에 수천명이 사망을 하였고, 프랑스에서 10만여명(파리는 2만여명), 러시아에서 10만여명, 영국 런던에서 23만여명,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서 1만5천여명이 사망한 무서운 질병이며, 지금까지 7차례에 걸쳐서 대유행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콜레라는 어떤 병인가?

1821년 8월 13일 평안도 감사가 "지난달 그믐 사이 평안부 성 안밖에서 사람들이 순식간에 죽어벼렸습니다. 열흘동안 1000여명이 죽었으나, 치료할 약과 방법이 없어 참담합니다. 정성껏 기도를 올리고 있지만,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외방의 각 마을과 인접한 여러 고을로 번지고 있습니다."라고 왕(순조)에게 긴급 보고를 올렸다.

이때는 질병을 알 수 없는 괴이한 병이라는 의미로 콜레라가 아닌 괴질(怪疾)이라고 불렀으며, 호랑이가 살을 찢는것 같은 고통의 병이라고 호열자(虎列刺)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질병은 쥐통으로 시작하는데, 발 뒤꿈치에서부터 근육경련을 일으켜 살을 찢는듯한 고통이 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고양이 부적을 사용했다. 사람들은 쥐 귀신이 몸 안에 스며들어 콜레라에 걸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콜레라를 예방하기 위해, 콜레라에 걸린 사람의 오물을 소각 또는 매립을 하였고, 병가에서 사용한 침구와 의복, 기구, 병실등은 소독하였으며, 선박의 왕래를 검사하였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을 금지하며, 위생 의료체제의 근대화가 시작된다.  

(참고로 1821년, 1859년, 1895년 콜레라가 조선 땅에서 대 유행을 할 때 마다 콜레라로 인한 사망자가 수십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 내용은 1881년에 발표한 내용이지만 2020년 현재 질병관리본부에서 공지하는 예방 수칙과 굉장히 유사하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건 콜레라가 우리들에게 대표적인 후진국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2001년, 2016년에 콜레라 환자가 발생을 하였지만, 예방 접종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게 현실이다. 

OECD 국가 경쟁력 10위의 대한민국은 상하수도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기에, 오염된 물과 음식으로 전염되는 수인성 질병의 대표적인 콜레라가 나타날 위험은 매우 낮다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내일 당장 어떠한 질병이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게 현실이고, 지금도 매년 콜레라가 발생하고 있고, 콜레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있는 무서운 질병이다. 

(참고 : https://www.who.int/news-room/fact-sheets/detail/cholera 

Researchers have estimated that each year there are 1.3 million to 4.0 million cases of cholera, and 21 000 to 143 000 deaths worldwide due to cholera.)

앞에서 언급했듯 엄청난 폭우로 인해 수인성 질병이 찾아올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으며, 특히 내년이 되면 우리나라에 콜레라가 나타난지 200년이 되는 때이다. 

콜레라는 첫 발견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종식된 적 없는 질병이며, 질병의 역사를 살펴보면 질병은 유행하는 패턴이 있다. 즉 언젠가는 찾아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만약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철저하게 대비하는게 현명한 방법이라 판단된다. 

지금은 다윗 왕의 반지에 적힌 글귀 'hoc quoque transibit(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잊고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하길 당부한다. 

현오 기자 yanoguy@gmail.com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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