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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국민칼럼」 독락당(獨樂堂) 에서 보내는 행복한 시간

기사승인 2020.09.23  10: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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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정식

 

코로나 사태로 노인들의 활동 공간이 방콕 신세로 전락했다. 매년 이맘때면 종묘 춘향 제례를 참관하고 고궁의 아름다운 봄 풍광을 마음껏 즐겨왔는데, 코로나 사태로 나들이길이 막혔다.

여말(麗末) 선초(鮮初) 의 대학자 권근(權近)은 독락당기(獨樂堂記)에서 “즐거움이 사물에까지 미치면 어느 한 가지도 즐거움 가운데 있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했다. 진정한 즐거움은 고독한 내면에서 찾으라는 뜻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주관하는 박물관 특설강좌, 일명 ‘박물관대학’은 1977년에 첫 개강으로부터 작년 제43기까지 1만 5천여 명이 수료했는데, 필자는 1993년 제17기로 수료했다. 그로부터 답사 여행을 27년 동안 이어오면서 여행기를 사진과 함께 남겨놓았다. 

외장하드에 저장한 사진과 기록이 1,200GB에 달한다. 지나간 일순(一瞬)의 ‘시간’이 함께 저장되어 있다. 코로나 사태로 외톨이가 되자, 내 독락당에서 지나간 기록들을 외장하드에서 다시 꺼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억은 결코 기록을 능가할 수 없다.

박물관대학에 이어서, 1999년 궁궐 공부를 3개월 수강한 후, 기본교육 60여 시간과 수습활동을 거쳐 ‘궁궐지킴이’ 수료증을 땄다.

수강 중, 가장 어려운 과제가 종묘제례에 관한 리포트 작성이었다. 향을 피우고 술을 부어 혼백을 불러오고 초헌, 아헌 종헌관이 순차대로 잔을 따르고 마지막에 지방(紙榜)을 불살라 음복주를 마신다. 제사가 진행되면서 제례악의 문악(文樂)인 ‘보태평(保太平)’과 무악(武樂)인 ‘정대업(定大業)이 차례로 연주된다. 공부를 하다 보니 제례악을 제외하고는 제사 지내는 순서는 안동 권씨 문중 제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00년 5월, 경복궁 관리사무소 임시 건물에서 고유제(告由祭)를 시작으로 1년간 경복궁에서 봉사활동에 들어갔다. 외국어로 안내할 자원이 부족해 미흡한 내가 주로 영어권 관람객들을 안내하게 되었다. 

하루는 70대 노신사 한 분을 모시고 경복궁 경내를 안내하는데, 질문도 많고 진지하게 내 설명에 귀담아들었다. 2시간여 관람 후, 노천매점에서 주스 한 잔을 시켜놓고 서로를 소개했다. 내가 먼저 예비역 장성증(將星證)을 내보이며 불과 얼마 전까지 해군에서 전투부대 사령관을 지낸 직업군인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노인네가 깜짝 놀라 일어서더니 깍듯이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동경 대학에서 일본사를 강의했고 정년퇴임 후, 한국사를 이해하려고 일부러 고궁을 찾았는데, 해군 제독 출신 안내자를 만나 감사하다고 했다.

일 년 동안, 매주 2회씩 고궁을 찾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작년 이맘때 기록을 불러왔다. 삼청동 국군 서울지구병원에서 종합 신체검사를 마치고 오랜만에 경복궁을 찾았다. 봄꽃이 만발한 가운데 관람객들이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그 틈에 끼어 손녀 같은 ‘궁궐지킴이’의 안내를 받으면서 20년 전의 내 모습을 중첩해보았다.

교태전 앞에 이르렀다. 교태전은 내명부를 관장하는 왕비의 공간인 동시에 왕과 왕비가 용종 (龍種)을 생산하는 곳이다. 관상감이 길일을 잡아 알려오면 왕은 아홉 칸 방중에 가운데 방으로 인도되고, 그 옆방에서는 지밀상궁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숙직을 선다. 부부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기에는 너무 개방된 공간이었다.

근정전을 나와 동쪽의 동궁전에서 비운의 양녕대군을 생각한다. 선초(鮮初)에 세자가 기거하는 동궁은 궁궐 밖에 있었다. 양녕이 17살 때, 중국 사신 잔치연에 불려나온 봉지련을 동궁으로 데려가 말썽을 피우고, 평양기생 소앵을 불러 그 음란함이 심했다.

태종이 경악하여 세자를 폐하여 양녕대군으로 삼고 효령(孝寧)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혜(譿) 는 양녕대군(讓寧大君)의 아들인데, 사랑하는 첩을 아비에게 빼앗기고 심화병을 얻어, 술김에 자주 사람을 죽였다.

일본 메이지 시대 다이쇼 천황은 젊은 첩실 한 명을 세자 히로히토의 거처로 보냈다. 그 여인이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했다. “15세의 히로히토가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곧이어 성인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양녕은 아들 첩을 취하고, 히로히토는 아버지 첩을 취했다. 구중궁궐(九重宮闕)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사관은 빠짐없이 이를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관람을 마친 후, 궁궐지킴이에게 살짝 다가가 “내가 궁궐지킴이 2기생”이라고 하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중에 일제총독부 건물이 철거되었다. 19년간의 일제 역사와 그 위에 덧칠해진 50년의 한국 현대사가 함께 날아갔다.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정치 행태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삼라만상에 일어나는 현상은 개개인의 눈에는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한다. 아는 만큼 더 많이 보고 싶고, 보고 싶은 만큼 사랑하게 된단다.

코로나 사태로 외부 출입이 불가한 가운데, 나만의 공간에서 자판기를 두드려 ‘과거’를 꺼내보는 이 재미는 어디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나만의 시공간이다.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그 사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나의 독락당에서는 지루함이 없었다.

 

* 필자 약력 *

- 여행작가
- 사진작가
- 전) 해군 제독
- 격월간 《여행작가》로 등단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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