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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날,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생들은 거리로...

기사승인 2020.11.02  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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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힘으로 일본의 야욕을 분쇄하자"(광주북중)

10월 30일 한·일기차 통학생간의 시비가 발단되어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으로 확대·발전되게 되었다. 

 1929년 10월 30일 오후 5시반 경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이던 박기옥은 친구들과 함께 나주역 집찰구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광주중 일본인 학생 몇 명이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했다. 이때  박기옥의 4촌 동생인 광주고등보통학교생 박준채가 격분하여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자 학생인 후쿠다 슈조(福田修三)가 "뭐냐. 조센징 주제에"라며 무시했고, 이에 격분한 박준채는 그의 따귀를 갈겼다 이 일은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며칠뒤인 1929년 양력 11월 3일은 일본으로서는 일왕 메이지(明治, 재위 1867~1912)의 생일인 명치절(明治節)이었고, 우리나라에게는 음력 10월 3일로 개천절이었다. 한국학생들에게는 희비가 교차되는 날이 되었다.  일본학생들은 축제분위기였고 한국학생들은 비분 속에 이 날을 맞이하였다.

광주고등보통학교 학교 측은 이날 명치절 기념식 뒤의  신사참배는 자유의사에 맡겼으나 학생들은 단 한명도 신사에 가지 않았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기로 결의한 것이었다. 이는 이후 길거리 투쟁으로까지 번져 항일학생운동으로 커졌다. 광주 시내에서 가두시위와 동맹휴교 등을 펼치면서 시작된 학생독립운동은 이후 약 5개월간 전국으로 확대됐고, 간도와 연해주 등 해외까지 확산됐다. 

"학생, 대중이여 궐기하라! 용감한 학생, 대중이여! 전사여 힘차게 싸워라."(광주 학생 항일운동 격문)

백범 김구 선생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이 3·1운동 이후 10여년 간 침체됐던 독립운동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상해임시정부 재정에도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광복후 이날은 '학생의 날'로 제정됐다. 1929년 그해의 개천절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그날이 되었고 광복후 학생의 날이 된 셈이다. 

이번 음력 개천절을 맞이하는 세계개천문화대축제가 11월 15일(일) 오후 2시에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새시대를 열 주인공은 우리 청소년이다. 이들이 역사광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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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사랑 청소년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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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사랑 청소년단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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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사랑 청소년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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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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