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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설민석을 끌어 내렸는가

기사승인 2021.01.04  15: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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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논객 양은모


얼마 전 “문제는 ‘설민석’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고문을 보았다. 이 글에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안모 교수는 ‘학자는 객관적으로 보고, 중립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어린 학생들이 출처 불분명한 역사관에 갇혀 있음을 한탄하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문장이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그러나 출처가 불분명한 것과 무의미한 것은 차이가 있다. 출처가 없다고 하더라도 유의미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출처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존재할 수 있는가’를 따져볼 문제라고 생각된다. 단순히 출처만을 트집잡아 그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은 아닐 것이다.

이미지 출처=한국능률협회 네이버블로그

영국의 역사가 E.H.카는 그의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였다. 즉, 단순히 역사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중립적인 판단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일제 강점기의 역사해석과 해방 후의 역사해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일제 강점기라면 왜 우리 민족이 이런 시련을 겪을 수 밖에 없었으며, 어떻게 하면 그 시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가 역사해석의 주제가 될 것이고,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근현대의 시기에는 정치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의 문제가 역사해석의 주제가 될 것이다.

객관적 또는 중립적의 문제는 무엇이 정의인가를 판단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27세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세계적 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라는 저서를 통해 정의를 규정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일임을 피력하고 있다. 흔히 학자가 지향해야 할 목표로써 객관적·중립적이란 제3자의 입장으로 보기 쉽다.

만약 길에서 누군가가 강도를 당했을 때 이를 객관적 입장으로 처신한다면 방관자일 뿐이다. 일본이 끊임없이 독도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역사기록을 들춰낸다면, 이에 대응하는 역사기록을 찾고, 기록자의 뜻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의 역사적 영토를 축소시킨 일제 강점기 학자들의 주장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면, 이를 바로잡는 것이 역사가의 역할이 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역사학자는 방관자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을 목표로 삼는 것은 오히려 정치인의 목표와 가까워 보인다. 이미 좌파 혹은 우파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안모 교수도 이미 한쪽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을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일례로 설민석이 그의 강의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가 사회적 해악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설민석의 메시지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정서를 중심에 두는 가운데, 마지막 결론부에서 ‘올바른’ 역사관을 강조하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식으로 마무리한다.”라는 것이다. 

안모 교수는 올바른 역사관을 강요하지 말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설민석은) 지금 시대에 역사학계가 지향하는 메시지가 결여돼 있으며, 그런 논의들을 제대로 소화하고 전달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라고 안모 교수는 주장한다. 

여기서 안모 교수의 주장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역사학계가 지향하는 메시지’ 즉, ‘우리나라 주류 역사학계가 줄곧 전해온 메시지’만이 옳기 때문에 그 이외의 메시지를 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금 더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자면, 역사 전문가인 주류 역사학계 이외의 자들은 역사학에 대해서 논할 자격도 없으며, 그들이 만든 역사가 곧 법이요, 진리라는 말이다. 

안모 교수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렇게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안모 교수는 비슷한 또래의 주류학계 연구자들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의 계간 ‘역사비평’ 2016년 봄호에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 역사학 비판’이라는 기획 발표문을 실었다. 이들은 한국 고대사의 영토 범위에 집착하는 연구들을 ‘사이비 역사학’이라 단정 짓고, ‘역사 파시즘’이라 비판했다.

역사학계에서 위서로 판명났다고 주장하는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것도 이들의 눈에는 사이비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 전문가인 예일대 원로 교수 도널드 케이건(Donald Kagan, 1932~)은 그의 강의에서 고대사를 연구할 때는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역사적 사료가 믿을만한 것인지에 대한 근거로써 ‘naive(순진한)’와 ‘naivete(순수함)’의 차이점을 언급한 바 있다. 

학생이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naive’ 상태가 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자료를 믿는다. 그리고 대학(a college education)에 진학하게 되면 어떤 것도 믿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더 높은 지혜의 단계에 올라서면 증명이 어렵더라도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단계인 이 상태를 ‘the higher naivete’라고 하였다.

고대사 연구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료부족일 것이다. 그래서 고대사를 연구하는 도널드 케이건 교수의 위와 같은 가르침은 원로교수로서의 지혜와 안목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정작 우리나라 주류 역사학계는 어떠한가? 사료부족을 이유로 단군이 신화라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 주류 역사학계이다. 이러한 역사학계의 메시지만이 옳고, 그 이외의 메시지는 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안모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과연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깨우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만섭 kmslove21@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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