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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에 맞서 이긴 안시성주는 양만춘이 맞다

기사승인 2021.02.08  1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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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역사! 피의 역사! 한반도의 피의 역사여! 안시성 아래 넓은 들판의 양만춘의 화살도 백성들을 위한 피의 역사였다. 살수 상류 10리에 물을 가로막은 을지문덕도 너를 위한 피의 역사였다. 《자유신종보》 제7호 (1919년 9월 19일)

안시성주는 양만춘楊(梁)萬春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안시성도 있었고 그 이전에도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들에게 모범이 되었던 장군이 외세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이끈 을지문덕,양만춘 등이었다. 그렇지만 국사 교과서에서는 현재 양만춘이란 이름을 볼 수 없다.  학계에서 안시성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양만춘이란 이름은 16세기 중국 소설에 최초로 등장한 가공의 이름으로 실제 이름은 알 수 없다." (위키피디아)

하지만 명나라 때 한 통속 소설가가 가상으로 만든 '양만춘' 이름을 지금까지도 거론한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아쉽지만 안시성주의 이름을 모른들 또 어떠하겠는가. (임기환 교수)

"이 안시성주의 이름을 흔히 양만춘이라 하지만 이는 중국 소설에 나오는 이름으로 역사적 근거 같은 것은 없다" (소설가 이문영) 

"가공의 이름이다. 역사적 근거가 없다. " 이렇듯 양만춘은 명나라 당시 소설가가 창작한 이름이라는 주장이다. 현전하는 기록 중에서 양만춘(梁萬春)이란 이름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을 학계에서는 16세기 명나라의 소설 《당서지전통속연의》(唐書志傳通俗演義)로 보고있는 것이다. 

당서지전통속연의'는 명나라 때 웅대목(熊大木)이 지은 연의식 소설로 웅대목은 16세기 중후반에 활동한 통속 소설가로 전해진다. (이 소설이 현재의 소설과 같은지는 의문이다)  '당서지전통속연의'는 전체 8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8권에 안시성 전투가 서술되어 있다. 

영화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

삼국사기에는 <안시성주>로만 기록되어있다. 

▶자치통감
"안시성 아래에서 (당군) 병사들이 시위하면서 선회하였다. (안시)성 안에서는 모두가 흔적을 감추고 나오지 않다가 성주가 성에 올라가서 절하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황제는 그가 (성을) 굳게 지킨 것을 가상히 여겨 비단 100필을 하사하면서 자기 임금을 섬긴 것을 격려하였다. 그리고 이세적, 강하왕 도종에게 명령하여 보병과 기병 4만을 거느리고 후위를 맡게 하였다." (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98 )

신구당서와 자치통감 등에 안시성주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것은 자기나라를 위해서 수치스러운 것을 쉼기려 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중국 문헌에서 이름을 숨겼기에 이를 참고한 삼국사기에도 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황제가 백암성에서 이기고 이세적에게 일러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안시성은 성이 험하고 병력이 정예이며, 그 성주가 재능과 용기가 있어 막리지의 난에도 성을 지키고 항복하지 않아...' -삼국사기 보장왕-

안에서는 모두 자취를 감추고 나오지 않았으나, 성주가 성에 올라 절을 하고 작별 인사를 하였다. -삼국사기 보장왕-

논하여 말한다. 당태종은 총명하고 좀처럼 세상에 나타나기 드문 임금이다. 난을 평정함은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에 비할 만하고, 다스리는 것은 성왕(成王)·강왕(康王)에 가깝다. 병력을 운용함에 이르러서는 기묘한 계책을 냄이 끝이 없고 향하는 곳마다 대적할 자가 없었다. 그러나 동방을 정벌하는 일에서는 안시에서 패하였으니 그 성주는 가히 호걸로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에 그 성명이 전하지 않으니 양자(楊子)가 말하기를 “제(齊)와 노(魯)의 대신이 역사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고 한 것과 다를 것이 없다. 매우 애석하다고 할 것이다.  - 삼국사기 - 


양만춘 이름이 나오기 시작하다

웅대목(1506-1579)의 당서연의 (1553년)
명나라 말기의 熊大木이 지은 唐書志傳(=唐書志傳通俗演義、秦王演義、隋唐演義、唐傳演義)에는 第八十四回에 安市城絕奴部梁萬春이라 나온다.  이 판본은 1620년까지 내려온다. 

연의(演儀)란 명나라 청나라 시기때 발전한 역사소설의 형태로써 '봉신연의','삼국지연의','수당연의'가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 당서전통연의(당서연의)는 명나라 말기에 웅대목이 지은 소설로 여기에는 안시성을 지키던 두 명의 장수가 묘사되었는데 절노부의 장수 양만춘(梁萬春), 관노부의 장수 구비(歐飛)이 그 두명이다. 그리고 그들의 부하 장수로는 추정국(鄒定國), 이좌승(李佐升),기무(暨武),장후손(張猴孫)이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처럼 창작된 이름이라는 것으로 중국인이 쓴 소설이다보니, 고구려식이 아닌 중국식 이름으로 창작된 결과가 바로 양만춘이라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홍희복(洪羲福)은 「제일기언 第一奇諺」 서문에서, “소설은 처음에는 사기(史記)에 빠진 말과 초야에 전하는 일을 거두어 모아내어 야사(野史)라고 하였다.그 뒤에 문장력은 있으나 일없는 선비가 필묵을 희롱하고 문자를 허비하여 헛말을 늘여내고 거짓 일을 사실처럼 하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사실처럼 믿게 하고 매료시켜 소설이 성행하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문소설(漢文小說))] 당대 소설이라는 장르가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소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당시의 ‘소설’은 지금의 개념처럼 허구를 다룬 문학 장르가 아니라, 정사(正史)의 기록을 보충해서 당대의 역사 사실을 기록한 책이었다. 실제 인물의 이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실제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안시성주는 홀로 외딴 성을 지켜 천하에 명성을 떨쳤는데, 고구려의 역사서에서는 도리어 이름이 일실되었다. 문헌에서 징험할 수 없음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의 소설에서는 양만춘(梁萬春)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이로 인해 그의 성명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천고에 통쾌한 일이 아니겠는가...(中朝小說乃謂梁萬春其人)" 월정집

윤근수(尹根壽·1537~1616)는 월정집에서 중국 소설에서 양만춘을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여 그 이름을 알게 되어서 통쾌하다고 했다. 창작된 이름이라고 여겼다면 통쾌한 일이 아니라 안타까운 일일 것이다. 이는 당대의 '소설' 을 허구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 다는 뜻이 될 것이다.  

▶ 윤근수의 '월정만필(月汀漫筆)'
양만춘이라는 이름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록한 문헌으로 알려져 있는 것은 윤근수(尹根壽·1537~1616)의 '월정만필(月汀漫筆)'이다. 

안시성주가 당 태종의 정예 군대에 항거하여 마침내 외로운 성을 보전하였으니, 그 공적이 위대하다. 그런데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서적이 드물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고구려 때의 역사서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임진왜란 뒤에 중국의 장수로 우리나라에 원병 나온 오종도(吳宗道)란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안시성주의 성명은 양만춘(梁萬春)이다. '당태종동정기(東征記)'에서 보았다"고 말했다. 얼마 전에 감사 이시발(李時發)을 만났더니, "'당서연의(唐書衍義)'를 보았더니 안시성주는 양만춘이었으며, 또 안시성을 지킨 장수가 두 사람이었다"고 말하였다. ('월정만필')

▶  '동춘당선생별집(同春堂先生別集)' (1699년)

안시성주에 대해서는 송준길의 문집인 『동춘당선생별집』「경연일기」의 현종 10년인 1699년 4월 26일조에 처음 그 이름이 보인다.

"현종이 안시성주의 이름이 누구냐고 묻자, 송준길이 답하기를 양만춘(梁萬春)이며, 이세민의 군대를 맞이해 능히 막아냈으며, 성을 잘 방어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현종이 그것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느냐고 묻자, 송준길이 답하기를 옛날 부원군 윤근수(1537~1616)가 중국에서 기록이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김창흡(金昌翕·1653~1722)의 한시 
千秋大膽楊萬春 箭射虬髯落眸子
천추에 대담한 양만춘이 용의 수염 눈동자를 화살 한 대에 떨어뜨렸네’

▶열하일기 (1780년)
1780년 청나라를 방문한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도강록」6월 28일자에는 다음 기록이 있다.
又世傳安市城主 楊萬春 射帝中目 帝耀兵城下 賜絹百匹 以賞其爲主堅守
"예로부터 전하는 말에, 안시성주 양만춘(楊萬春)이 이세민의 눈을 쏘아 맞히자 이세민이 성 아래에 군사를 집합시켜 시위하고 있는 양만춘에게 비단 100필을 주어 그가 제 임금을 위해 성을 굳게 지키는 것을 가상하게 여겼다.“

▶ 이익 성호사설 : 하맹춘의 여동서록(餘冬序錄) 1528년이전
이익의  성호사설 제27권 經史門 安市城主 편에서 愚按何孟春餘冬序錄云安市城將卽梁萬春也 라고 하여 하맹춘(何孟春)의 《여동서록》(餘冬序錄)에 양만춘의 이름이 있다고 하였다. 

하맹춘은 1474年-1536年에 살았던 명나라의 문인으로, 시기는 임란 이전으로 여동서록餘冬序錄은 1528년이전에 지어진 것이므로, 여기에 양만춘의 이름이 있다고 하나 아직은 그 내용이 발견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 안정복 동사강목 (1756 ~ 1760)
안시성주(安市城主)의 성명 고구려 보장왕 4년(645) 성주(城主)의 성명(姓名)이 동사(東史)에는 전하지 않는데, 태종(太宗)의 동정기(東征記)에 양만춘(梁萬春)이라 하였다. 이것이 김하담(金荷譚)의 《파적록(破寂錄)》에서 나왔는데, 《경세서보편(經世書補編)》에도 그러하다. 상고하건대 혹은 추정국(鄒定國)이라 하였다. <동사강목> 부록 상권 상

▶조선상고사 : 양만춘과 추정국
단재 신채호는 그의 『조선상고사』에서 안시성주 양만춘과 오골성주 추정국을 들고 있다.

‘당 태종이 철군을 명하자 안시성주 양만춘이 성문을 열고 나와 공격하는 바람에 당군이 큰 혼란에 빠져 인마가 서로 밟혔는데, 그 와중에 당 태종의 말이 진흙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급기야 왼쪽 눈에 화살을 맞고 사로잡힐 위기에 몰렸다. 당의 장수 설인귀(薛仁貴)가 달려와 그를 구출했다’’

▶이맥(1455 ~ 1528)의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사실 가장 빠른 기록은 이맥의 태백일사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는 윤근수의 '월정만필(月汀漫筆)'과 명나라 웅대목(1506-1579)의 당서연의 (1553년)보다도 빠르다

양만춘을 가장 먼저 기록한 문헌은 윤근수의 월정만필로 윤근수(1537~1616)는 14대 선조 때의 문신이다. 이맥은 (1455 ~ 1528) 10대 연산군, 11대 중종 시대 사람이다 

이때문에 위서론자들은 태백일사가 안시성주의 이름이 양만춘이라고 회자되고 있었던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 이후에에 만들어진 책이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태백일사는 그 내용에 대한 근거가 차고 넘치기에 이맥 선생이 지은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맥 선생은 양만춘이 적힌 또 다른 사료를 보았음이 확실하다

“막리지(연개소문)가 기마병 수백을 거느리고 순시하다가 난하언덕에서 멈추고, 전황을 자세히 물은뒤에 사방에서 총공격하라고 명하였다. '연수' 등이 말갈 군사와 함께 양쪽에서 협공하고 '양만춘'은 안시성에 올라 전쟁을 독전하니, 사기는 더욱더 올라가 일당백으로 용감하게 싸우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세민'은 이기지 못함을 분통해 하여 감히 결전을 외치며, 출전하였다. '양만춘'이 '이세민'을 보자 호통을 치며, 화살을 날렸다. '이세민'은 말을 타고 진지(陣地)로 나서다가 허공을 반으로 가르며 날라오는 화살에 왼쪽 눈 한 복판을 맞고 말에서 떨어져 버렸다. '이세민'은 숨을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종군하는 병사들 사이로 숨어 버렸다. '이세민'은 '세적'과 '도종'에게 보병과 기병 수만으로 둘러쌓아 자신을 보호하도록 명하였다
-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이때 막리지 연개소문이 싸움에 이긴 김에 계속 휘몰아쳐서 급히 이들을 뒤쫓았다. 추정국은 적봉에서 하간현에 이르고 양만춘은 곧바로 신성을 향하여 군세를 떨쳤다.  이에 세민이 궁지에 몰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사람을 보내어 항복을 받아달라고 애걸하였다. 막리지가 정국,만춘 등의 기병 수만을 거느리고 성대하게 의장을 갖추어 북치고 나팔부는 군악대를 앞세우고 장안에 입성하였다. 세민과 더불어 약정하여 산서성,하북성,산동성,강좌가 모두 고구려에 속하게 되었다 -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본기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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