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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 사마천 사기 ‘표’와 ‘서’ 전 7권 출간

기사승인 2021.05.05  15: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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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소장 이덕일) 사기연구실은  ‘본기(전 9권)’를 작년에 출간한 데 이어 <사기> ‘표(表)·서(書(전 7권)’를 번역하고 새로운 주석(신주)까지 달아 출간했다.

사마천은 하양(지금 섬서성 한성시) 출신으로 한무제 때 태사공을 역임하다가 이릉 사건에 연루되어 궁형을 당했다. 기전체 사서이자 중국 25사의 첫머리인 《사기》를 집필해 역사서 저술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그러나 기전체 사서에는 싣지 못한 사건과 인물이 너무 많아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표·서’를 작성했다. 

‘표’는 모두 10개인데, 사건을 위주로 분류한 사건 연표와 인물을 위주로 분류한 인물 연표로 나눌 수 있다. 오제부터 한 무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나라에서 있었던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의 즉위, 폐위, 전쟁, 사망들에 관한 연대를 표로 작성했다. 이런 표를 작성할 때 사마천이 가장 고심했던 것은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마천은 그나마 사료가 남아 있는 주(周)와 노(魯)나라 연대기를 기준으로 방대한 ‘표’를 작성했다.

‘표’를 번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마천은 수수께끼 같은 숫자만 나열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 연표인 ‘육국연표(六國年表)’의 서기전 469년의 경우 사마천은 ‘주(周) 八, 진(秦) 八, 조(趙) 四十九, 초(楚) 二十, 연(燕) 二十四, 제(齊) 十二’라고만 적었다. 다른 모든 연표도 마찬가지로 부가설명이 없다. 이 숫자들은 ‘주 원왕 8년, 진 여공공 8년, 조 간자 49년, 초 혜왕 20년, 연 헌공 24년, 제 평공 12년’이라는 뜻이다. 그간 출간된 대부분의 연표는 사마천이 쓴 숫자를 그대로 옮겨놓거나 잘못 놓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표’는 최초로 이런 모든 숫자의 의미를 풀어 서술하고 때로는 신주까지 달았다.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표’가 탄생한 것이다.

또한 사마천이 감춘 우리 역사의 비밀을 다수 밝혀놓았다. 《사기》는 한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최초의 중국민족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사마천은 동이족의 역사를 삭제하거나 한족의 역사로 바꾸기도 했다. ‘삼대세표’에서는 고대 대부분의 군주가 동이족임을 밝혔다. 또한 ‘진초지제월표’에서는 고대의 요동이 지금 요동(요녕성 요하 동쪽)과 다르다는 사실을 밝혔다.

<사기> ‘서’는 ‘팔서’라고도 불린다. ‘예서(禮書)’부터 ‘평준서(平準書)’까지 나라가 돌아가는데 꼭 필요한 전문분야 여덟 개를 서술했다. 사마천은 ‘태사공 자서’에서 “예(禮)와 악(樂)을 덜어내고 보태었으며 율력(律曆)을 바꾸고 병권(兵權), 산천(山川), 귀신(鬼神), 천인(天人)의 관계에서 피폐한 국가를 떠맡고 변화를 통하게 해서 ‘팔서(八書)’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다.

‘표·서’의 번역은 <본기>처럼 직역을 원칙으로 삼았다. 본문은 물론 ‘사기집해·색은·정의’의 3가주석을 한 자도 빼지 않고 번역했고, 청나라 양옥승(梁玉繩)의 ‘사기지의’와 ‘고본죽서기년’, ‘춘추좌전’, ‘한서’ 등과 비교해 번역했다. 편마다 해제를 달아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고, ‘역서(曆書)’, ‘천관서(天官書)’, ‘평준서(平準書)’는 이 분야 전문가들의 감수를 받아 완성도를 높였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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