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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을 기문이라고 황당한 논리를 만든 식민사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

기사승인 2021.09.11  1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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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니시 류는 ‘기문·반파고’(己汶伴跛考, 1922)에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문(己汶)을 전라도 남원이라고 희안한 언어 유희로 황당한 논리를 만들어 우겼다 그런데 이것이 100년이 지난 지금 통하고 있다. 현재 주류 강단역사학계는 남원이 기문이라며  ‘기문가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겠다고 적극 나서고 있다.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며 국민들이 분노할 매국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일제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는 기문이 왜 남원이라고 했을까 ? 그의 기문반파고「己汶伴跛考」 라는 논문의 한 부분을 살펴보자. 

이마니시 류(今西龍), 「己汶伴跛考」 中

이 강 (주:기문하) 이름에 의거하여 일본서기의 기문은 이 강의 유역에 있는 것이 명료하다. 앞에서 서술한 것처럼 汶을 빌려서 표시하는 말은 ‘水’의 방언과 말하는 소리가 같고 그 변이가 동일하므로 汶은 mil로도 될 수 있다. 조선에서 용을 mil(u)라고 부르는데 일본어의 ‘미츠치[ミツチ]’와 같은 말이다. 

섬진강의 상류인 남원은 백제 시대에 古龍으로 쓰였던 것이 삼국사기 지리지에 보인다. 고룡은 ko-mil(u)로 큰 물이라는 뜻과 말하는 소리를 같이 하고 기문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기문은 고룡으로 쓰여졌고 다음에는 古를 대신해서 蛟(kyo)자를 썼다. 지금 남원의 산성을 蛟龍山城이라고 써서 그 옛 이름의 자취를 남겼다. 己汶 즉 基汶이 남원인 것은 의심할 것 없다. 基汶의 基는 크다는 뜻이고 汶은 물로도 마을로도 해석할 수 있으므로 강의 이름으로부터 지명이 생겨났는지 지명으로부터 강의 이름이 생겨났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강의 이름으로부터 지명이 생겨났을 것이다. 

출처 : 기문반파고 - 이마니시 류(今西龍), 「己汶伴跛考」 史林  第7卷 第4號, 1922-위가야 譯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명료하다" " 의심할 것 없다. "라고 하면 논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를 상쇄하고자 분명하다는 듯한 표현을 남발한다. 이마니시류 역시 이런 표현을 논문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남원이 옛 지명이 '고룡'이니 이를 '기문'과 어떻게든 맞추려고 억지 논리를 만드는 모습이다. 국내 문헌에는 어디에도 남원이 기문이라는 기록이 없다. 사실 일본서기에도 기문이라고만 나올 뿐 그곳이 남원이라는 얘기는 일언반구 없다. 

남원의 옛 고대 명칭은 삼국사기,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을 보건데 '고룡'이다. 그런데 이를 위와 같이 말도 안 되는 언어 유희로 기문국이니 기문가야가 남원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버렸다. 해방 이후 일제가 왜곡한 부분을 다시 돌려놨어야 하는  우리 학계는 100년 전의 이 엉터리 논문에 모든 것을 맞추기로 한듯하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말이 있다.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한다는 한자 숙어다. 사슴을 보고서는 사슴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고백할수 있어야 했으나 우리 학계는 이런 엉터리 논리조차 틀리다고 말하지 못했다.

결국  남원이 기문국이이라고 하는 이들은 이 내용을 알건 모르건 이마니시류의 억지 논리를 따르고 순응하는 자가 되어버렸으며 이들은 일본에 부역하는 자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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