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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왜곡의 시초, 1880년 일본참모본부의 황조병사(皇朝兵史)

기사승인 2021.09.21  01: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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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모두 고대 한국은 일본(야마토왜)의 식민지라는 등 왜곡된 고대한일관계사를 발표했거나 발표하고 있는 것을 보고, 도대체 왜 그들은 한결같이 근거 없이 그러한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하였지만 그 때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황조병사를 접하면서 그들의 고대사 왜곡은 이미 1880년에 일본육군의 참모본부가 펴낸 이 『황조병사에 연유함을 알게 되었다. 皇國, 皇軍,皇朝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황조병사의 황국사관皇國史觀은 국가 간의 관계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개인 간의 관계인 신하와 군주의 관계로 환원하여 물건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동하는 것은 모두 천황에 대한 조공(貢), 반대로 물건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것은 천황으로부터의 하사(賜)로 표현하는 사관이라는 것을 확인하게되었다.

일본이 한국 침략을 주장한 것은 1880년 일본 참모본부의 『황조병사』가 처음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은 1873년에 조선에 도발(征韓)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일본 정부 안에서는 일본이 조선을 전장으로 몰아야 한다(조선 정복)는 주장까지 하였다. 그러나 1876년에는 실제로 일이 외교술로 협박하여 조선을 개국시켰으며 그 후 일본은 서울에 강력한 외교관(공사)과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 후 1905년에는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일본은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였으며, 그로부터 5년 후인 1910년에는 드디어 조선을 일본의 식민지로 삼았다. 결과적으로 일본 참모본부의 황조병사 계획대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참고 : 최재석, 고대한일관계사의 연구 비판, 24쪽 ~ 25쪽)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가야와 임나는 동일국”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물론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처음 만든 논리다. 그런데 ‘임나=가야설’은 민간인 식민사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본 참모본부(參謀本部)가 조직적으로 퍼뜨린 논리이기도 하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조선을 강제 개항시킨 6년 후인 1882년에 육군참모본부는 ‘임나고고(任那稿考)’ 및 ‘임나명고(任那名考)’라는 임나 관련 저서를 간행했다. 가야가 임나이자 야마토왜의 식민지라고 주장하는 책들이다"라고 주장한다. 

일본 참모본부는 이보다 앞서 1880년에 「皇朝兵史」, 1882년에 「任那考」를 편찬한 바 있다. 이는 일본 군부가 집요하게 조선침략에 대한 흉계를 꾸며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뒤인 1892년 하야시 야스스케(林泰輔)는 한국사에 관한 최초의 일본인 저서로 알려진 『조선사』를 동경에서 간행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고구려 광개토왕 때 일본은 신라, 백제를 쳐부셨고(破), 광개토왕은 이를 구하려고 일본과 싸웠다”(권2-28쪽)고 적고 있다. 최재석 『고대한일관계사 연구비판』 경인문화사, 2010,34쪽

1880년 황조병사(皇朝兵史)
1882년  ‘임나고고(任那稿考)’ 및 ‘임나명고(任那名考)

이런 일본 참모본부에서 시작된 역사가 바로 임나일본부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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