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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사] 일본천황 백제가 임명 

기사승인 2021.11.30  12: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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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높이치는 대화개신은 백제계 내부의 정변으로 김춘추가 군사 요청을 하러 갔다가 별 소득없이 돌아온다.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고 천황을 배출하면서 좌지우지 했던 소아씨 집안은 백제 개로왕의 아들 문주와 남쪽으로 떠난 목협만치가 그 뿌리이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부흥을 위해 소아씨 집안을 무너뜨린 나카노우에인 중대형황자가 큐슈에서 백제 부흥에 앞장서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대화개신 드라마, 만화, 노래, 연극등 중요한 사건으로 다루며 교육시키고 홍보하고 있다.

영상 주소 https://youtu.be/ctY_1CMDNQ4

아래는 이덕일 역사TV의 영상 내용 전문이다.

일본의 대화개신
이번 시간에는 백제百濟와 왜倭에 대해서 조금 더 보충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일본日本에서 대단히 높이치는 사건 중에 하나가 대화개신大化改新이라는 겁니다. 645년에 발생한 건데요.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에 비견해서 대단히 높이 평가하죠. 메이지유신 자체가 당시 도쿠가와막부[에도막부江戶幕府]를 무너트리고 메이지일왕의 친정을 만들었다 라고 하는 논리를 가지고 고대사에 적용해서 호적을 무너트리고 천황의 직접 통치를 회복했다. 이렇게 대단히 높이 평가하는 게 대화개신, 다이카개신입니다. 다이카개신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황극여제의 아들 중대형황자
다이카개신 핵심은 645년에 나카노오에[中大兄, 626~672]황자 나중에 천지천황天智天皇이 되는 인물인데요. 일본에서는 황극여제皇極女帝라는 인물이 2번 왕이 돼요. 고교쿠여제가 있고 제명여제가 있는데 제명여제, 사이메이여제 둘 다 같은 인물이 텀을 한 번 뒀다가 두 번 여왕이 되는 인물인데요. 황극여제의 아들인 중대형황자. 다이카개신이 바로 중대형황자가 주도하게 됩니다.


제가 저번에 김춘추金春秋(604~661)가 자기 딸 고타소古陀炤(?~642) 부부가 전사하고 나서 왜국에서 바로 대화개신이 일어났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왜국 가서 중대형황자를 만났더니 결국은 백제계다 라고 해서 돌아와서는 자기 아들 문왕을 데리고 당나라로 갔다는 말씀을 드렸죠.
 
일본을 좌지우지한 소아씨집안
대화개신을 이해하려면 일본사의 소아씨蘇我氏 집안을 이해해야 되는데요. 소아씨 집안은 나중에 소아입록蘇我入鹿(?~645), 소가노 이루카 라고 하고. 그 다음에 소아마자蘇我馬子(551~626), 소가노 우마코 라고 하고 그다음에 소아하이蘇我蝦夷(?~645) 이렇게 쭉 이어지는 집안인데요. 이 소아씨 집안이 주도하는 일본사를 보면 천황이라고, 나중에 높이는 일본천황은 소아씨 집안에서 맘대로 내는 겁니다. 그런데 소아씨 집안에 그 뿌리가 누구냐 하면은 일본 고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삼국사기』를 주목합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백제의 개로왕蓋鹵王(?~475)이 고구려 장수왕長壽王(394~491)이 나중에 한성을 포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한성이 포위돼서 개로왕이 함락 직전에 자기 아들 문주를 내려보내죠. “나는 여기에 도성과 함께 죽겠다.” 라고 하면서 “대신에 너는 살아남아서 나라를 재건해라.” 라고 해서 문주를 내려보내는데 문주文周(?~477)와 같이 가는 인물 중에 목협만치木劦滿致(?~?)라는 인물이 있어요. 목협만치가 바로 소아가의 뿌리다. 이렇게 일본사 연구하는 학자들이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또 어떤 사료를 찾아보니까 일본에서는 소아씨 집안의 뿌리를 소아고려 또 이렇게 써놓은 것도 있어요. 그래서 일본사의 특이한 점은 일본사는 서로 이름 바꾸는 게 있어요. 비밀이 많은 겁니다. 서로 이름 바꿔주고 막 하기 때문에 일본사는 공부하려면 복잡하고 많은 사료를 뒤져야 하는데 하여간 소아씨는 백제계인거는 확실한 것 같아요. 

불교 수입을 주장한 소아씨 집안
나중에 백제 성왕聖王(?~554)이 불상하고 불경을 보내줘서 물부가物部家는 불교 수입을 반대하고 소아씨 집안은 불교 수입을 찬성해서 격렬하게 충돌이 벌어지게 되죠. 처음에 불상을 수입했는데 소아씨 집안에서 자기네 집안에 모시는 겁니다. 『일본서기』나 이런 걸 보면 백제 성왕이 불상을 내려줘서 불교가 시작된 걸로 나와 있지요. 처음에 자기네 집안에 모시다가 사찰을 짓고 하니까. 그 때 마침 전염병이 돌아서 이게 우리 전통신이 아닌 불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렇나 라고 해서 중지됐다가 그 다음에 소아씨가 다시 불교를 받아들이는데. 물부씨가 여기에 또 시비를 거니까 소아씨가 군사를 일으켜서 물부씨를 공격해서 이기면서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는 그런 집안이죠. 

일본왕실과 소아씨 집안
그 중에 소아도목蘇我稻目(?~?)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요. 이 소아도목은 일본의 흠명일왕欽明日王(509~571), 자기는 천황이라고 하죠. 일왕흠명에게 자기 두 딸을 시집보내요. 견염원堅鹽媛이란 딸하고 소매원이라는 인물을 시집보내는데 일본의 31대 일왕이 요메이, 용명用明(?~587)이라고 그러고 32대가 숭준崇峻(?~592), 스슌이라고 그러고 33대가 추고推古(554~628), 스이코라고 그러는데 이 세 왕이 전부 다 도목의 딸들이 낳은거에요. 그 이후에 일본의 왕들도 전부 다 이쪽 집안에서 좌지우지하는 겁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안 들면 소아씨 집안에서 일왕을 내쫓고 자기 말 잘 듣는 사람 세우고 이렇게 하니까 여기에 나카노우에 황자가 대단히 불만을 가지고 있다가 645년에 삼한의 사신을 맞이할 때, 이 때 군사를 일으켜서 소아입록, 소가노 이루카 라고 하는데 소가노 이루카를 줄여버리게 되죠. 

근데 여기서 제가 이 사료를 보면 삼한의 사신을 맞이했다. 이렇게 나오는 거죠. 삼한이 뭐냐 이거예요. 645년에 삼한이 어디가 있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최재석 교수님 같은 경우는 이것이 백제의 명령을 받고 한 거다 라고 해석하셨는데. 백제 사신이라고 안 쓰고 삼한의 사신이라고 썼죠. 왜냐면 『일본서기』는 황국인 백제를 제후국으로 쓰고 제후국인 야마토왜를 황국으로 바꿔서 썼다고 그랬죠. 그런 사료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백제의 사신을 맞이하는 데 거기에서 변을 일으켜서 당시 천황 위에 있던 소아입록, 소가노 이루카를 죽였다 라고 보기는 힘든 겁니다. 백제의 사전 승인이 있지 않으면 이건 하기 힘든거죠. 그래서 최재석 교수님 말대로 백제의 명령을 받아서 했다 라고 하는 해석이 저는 타당하다고 보는데요. 그러고나서 소아입록, 소아씨는 이것으로 멸족에 가까운 엄청난 피해를 입고 나카노우에 황자가 정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 때 나카노우에 황자를 찾아온 인물이 김춘추인데 결국 김춘추가 아무 소득없이 돌아갔다는 건 백제계 내부 사이에 정변인거죠. 백제계를 무너트리고 신라계나 고구려계가 차지한 것이 아니라 백제계 내부의 정변이기 때문에 결국은 김춘추가 실패하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거죠. 

그러다가 660년에 도성이 함락되니까 곧바로 태재부太宰府에 전시 수도를 만들어서 규슈[九州]에 선박을 제조하고 군사를 기르고 하는 역할을 또 대화개신의 주역인 중대형황자가 이걸 주도를 하는 겁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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