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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사]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그려 놓은 중국 국가박물관

기사승인 2021.11.30  14: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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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하제본기 태강지리지에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그곳이 만리장성이 있다고 쓰여있다. 갈석산은 연산산맥의 끝이고 한나라와 고조선을 가르는 자연 국경이었다

갈석산은 중국에서 너무나 유명한 산입이다. 9명의 황제가 올랐고 최초로 오른 인물이 진시황제이다. 자신이 6국을 통일하고 나라 끝까지 가본 곳이 갈석산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갈석산 입구에는 산을 오른 9명의 황제들에 관한 설명이 있다. 

그런데 일본인 식민사학자 이나바이와키치가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있다는 것을 최초로 주장했고 그뒤로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그대로 정설로 믿고 학생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모든 역사 사료가 중국의 동쪽 끝에 있는 갈석산을 고조선의 경계로 보는데 남한의 강단사학자들이 그대로 주장하니까 중국정부 또한 모든 장성 박물관의 만리장성 지도를 조선까지 그려 놓고 있는 형편이다. 

이덕일 역사TV의 내용 전문이다.

영상 주소   https://youtu.be/PD-cPZzdaTg

중국 국가박물관 지도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고조선의 위치를 알려면 사기라든지 한서라든지 중국 고대 사료에 나오는 몇 가지 중요한 지명들이 있어요. 산과 강들이 있는데. 오늘은 그 지명들 몇 개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살펴볼 강은 패수라는 강인데요. 패수는 고조선과 중국 진나라, 한나라의 국경이죠. 패수의 위치가 어디인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어왔고 지금도 있습니다. 이 논란들을 크게 따지면 두 가지로 볼 수가 있는데 하나는 패수가 지금의 대륙에 있었다고 하는 대륙설과, 한반도에 있었다고 하는 한반도설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은 대략 짐작하실 거예요. 패수가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누구일 것이라는 짐작은 다들 하실텐데요. 패수를 한반도의 압록강이다, 청천강이다, 대동강이다 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대부분 강단의 식민사학자들이고. 패수가 대륙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북한학자들과 남한의 민족사학자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죠. 그런데 우리가 보통 대한민국 국민 입장에서 볼 때 패수가 대륙에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역사라는 것은 지금 우리 입장에서 좋다고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 패수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찾아봐야 하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가 패수의 위치를 알려면 몇 가지 조건들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는 것은 사료에 나와 있는 패수의 위치를 찾아봐야 되는 건데. 사기 조선열전에 나오는 위만 이야기죠. 위만이 동쪽으로 패수를 건넜다고 돼 있습니다. 패수가 한반도로 흐르는 압록강이나 청천강이나 대동강이면 남쪽으로 건너야되지 동쪽으로 건너서는 영원히 강을 못건너죠. 계속 동쪽으로 끝까지 강의 수원지까지 올라가야지, 건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위만이 동쪽으로 건넜다는 패수는 동서로 한반도의 강같이 동서로 흐르는 강에서는 찾을 수가 없고 남북으로 흐르는 강을 찾아야 패수가 있지 않느냐라고 패수의 위치를 대륙에서 찾게 됩니다. 패수의 위치를 대륙에서 찾는 학설도 몇 가지가 있습니다.

크게 말씀드리면 지금의 북경을 흐르는 조백하강이라고 보는 학자가 있고, 하북성 난하라고 보는 학자가 있고, 요녕성 대릉하나 요하로 보는 학자들이 있죠. 특히 북경의 조백하 같은 경우는 세 강이 나중에 모여서 천지쪽으로 빠지는데. 사기 조선열전을 보면 조선이라는 이름이 붙은게 아침이 맑다라는 뜻이잖아요. 사기 조선열전을 보면 주석에 선수, 흑수, 열수 이 세 강이 모여서 흐른다라고 하는데 북경부근의 조백하가 세 강이 모여서 흐르는 강이기 때문에 이쪽 강으로 보는 견해가 있고. 하북성 난하로 보는 견해가 있고, 대릉하, 요하로 보는 견해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전부 다 한반도로 흐르는 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문제는 중국의 수경이라는 책이 있는데 저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항흠이라는 사람이 썼다는 설도 있고 여러 설들이 있는데 곽박이라는 사람이 주석했다는 설도 있고 자료마다 좀 다르게 나오는데 중국 고대의 강들에 대해서 쓴 강에 관한 백과사전인데.문제는 이 수경이 북경에서 동북쪽으로 흐르는 강을 서술한 부분에 가보면 상당히 헷갈려요, 자신들이. 내용을 보면 분명히 난하를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또 요하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상당히 헷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패수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냐면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간다. 이렇게 써 놨어요. 그리고 패수에 대해서는 수경 뿐만 아니라 설문해자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간다. 이렇게 써놨기 때문에 패수가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죠. 그러다 보니까 패수가 동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가면 압록강이나 청평강이나 대동강은 전부 다 서쪽으로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여기에 고민이 생겼는데. 위만조선 이후에 약 500년 후에 태어난 북위의 역도원이라는 학자가 패수의 흐름에 의문을 가졌어요. 그래서 고구려 사신이 위나라에 왔을 때 물어봅니다. 물어보니까 지금 고구려 수도로 흐르는 강이 어디로 흐르냐 하니까 고구려 사신이 서쪽으로 흐른다고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도원이 아 이것은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라고 동자를 서자로 바꿔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찾는 것은 고구려 왕성을 흐르는 강을 찾는 게 아니라 고조선과 진한의 국경이었던 패수를 찾는 거예요. 그런데 역도원이 이걸 헷갈리면서 동자를 서자로 바꿔놨습니다. 그랬더니 일본인 식민사학자들과 남한의 강단사학자들이 너무 신이 나서 이것은 수경의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간다고 쓴 것은 서자를 잘못 쓴것이라고 해서 원문을 동자를 서자로 바꿔서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이라고 해석을 하는 겁니다.

 하나는 열수라는 강이 있어요. 열수라는 강은 뭐냐면 낙랑군 산하의 25개 속현이 있습니다. 낙랑군을 군이라고 보면 그 아래에 25개의 읍이나 면단위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열구현인데 열구현은 열수라는 강의 입구에 있어서 열구라는 이름이 붙은거죠. 특히 열수에 대해서는 중국 사료에 딱 두 번 나와요. 한 번은 산해경에 나오고 한 번은 후한서 군국지에 나오는데 열수는 강의 이름이다. 요동에 있다. 이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남한 강단사학자들은 열수가 대동강이라는 겁니다. 열수에 대해서 사료는 딱 두 번 나오는데 두 번 다 열수는 요동에 있다고 하는데 요동에 있다는 열수가 남한 강단사학에서는 대동강이라는 겁니다. 언제부터 대동강 평양이 요동이 됐냐 하는 이야기죠. 제가 놀란게 예전에 한번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어느 호텔을 빌려서 세미나를 한 적이 있는데 거기 가서 제가 그 얘기를 하는데 어떤 대학원생이 열수가 대동강인데 왜 요동이라고 하느냐고 항의를 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데. 도대체 대학원에서 1차 사료 공부를 시키는건지 안 시키는건지. 물론 열수를 대동강이라고 한 사람이 남한 강단사학계, 국사학계의 태두라고 하는데. 저는 이 국사학계할 때 나라 국자가 일본인지 한국인지 저는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병도씨가 ㅇ려수를 대동강이라고 주장했죠. 그럼 역사학은 20세기 사람인 이병도씨가 열수라고 주장했으면 그것을 그대로 따르는게 아니라 무슨 근거로 했는지. 사료라고는 유일하게 산해경과 군국지 두 사료에 열수는 요동에 있다고 했으면 요동에서 찾아야지 왜 대동강에서 찾느냐하는 이야기죠. 남한 강단사학자들의 위치 비정이라는 게 이런 식인 겁니다.

또 하나는 낙랑군 위치를 찾을 때 아주 중요한 것이 갈석산이라는 산인데요. 갈석산은 태강지리지라는 책에 낙랑군에는 수성현이 있고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만리장성이 시작되는 기점이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하는 내용이 있어요. 낙랑군 수성현 유갈석산 장성소기. 이렇게 한자라 돼 있는 내용인 겁니다. 태강지리지에 의하면 낙랑군에는 수성현이 있고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바로 그 갈석산 부근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고 하는 이야기니까 고대 수성현이 어딘지, 갈석산이 어디 있는지,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어디인지 이걸 찾아보면 당시 낙랑군이 어디 있었는지도 알 수 있게 되죠. 그런데 남한 강단사학에서는 이 갈석산이 황해도 수안에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지금까지 우리가 살면서 황해도 수안에 만리장성 흔적도 있어야 되는데 만리장성이 황해도 수안까지 왔다는 얘기를 들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는거예요. 주장하는 근거를 찾아보니까 결국은 황해도 수안의 수자와 낙랑군 수성현의 수자가 갖다라고 하는 그 이야기 하나밖에 없는겁니다. 그런데 황해도가 수안이란 이름이 붙은건 고려시대때 붙은 거예요. 우리는 서기전 108년, 고려시대보다 천년 이전에 생겼던 낙랑군 수성현을 찾는 건데 천 년 이후에 황해도에 수안이란 이름이 붙었다 해서 거기를 낙랑군 수성현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거기 수안군에 요동산이란 산이 있는데 그게 갈석산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수안군에 보면 방원진에 석성이 있는데 그게 만리장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남한강단사학에서 주장하는 것은 뿌리를 찾아보면 전부 다 일본인들이 뭐라고 했는지만 찾아보면 이 사람들의 생각을 그대로 알 수가 있어요. 그것도 찾아보니까 이나바 이와키치라는 일본인 식민사학자가 총독부 소속의 식민사학자가 진장성의동단고라는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어디인가라는 논문을 쓰는데 이 논문에서 이나바 이와키치가 주장한 걸 그대로 따라서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그럼 실제로 갈석산이 어디 있느냐. 갈석산은 지금의 하북성 창려현 북쪽에 그대로 있어요. 창려현이 중국의 여러 사료를 찾아보면 과거에 수성현이었다고 하는 중국 기록이 있고. 창려현 동쪽이 바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었던 산해관이 그 부근에 있습니다. 물론 이 산해관은 명나라 때 쌓은 거예요. 명나라 이전에는 만리장성이 산해관까지 오지도 못했습니다. 그 근처에 진황도시가 있죠. 진황도시가 있는 이유는 진시황이 거기까지 왔다고 해가지고 진황도시가 있는겁니다. 그런데 창려현과 조금 북쪽에 노룡현이라는데가 있는데. 노룡현이란 곳이 명나라 청나라 때 영부라는 곳이에. 중국의 여러 사료들을 보면 노룡현 지금의 영평부에 바로 낙랑군 조선현이 있었다고 하는 중국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민족사학계쪽에서 바로 낙랑군의 위치를 하북성 일대를 보고있는 겁니다.

갈석산이라는 것은 중국사에서 대단히 유명한 산이에요. 지금도 올라가다보면 갈석산을 오른 황제들의 초상과 설명을 갖다 갈석산 입구에 써놓은 걸 볼 수가 있습니다. 모두 아홉 명의 중국 황제가 갈석산을 올라 갔어요. 그래서 갈석산의 별명이 구등황제산인데. 아홉 명의 황제가 오른 산이라고 해서 구등황제산인데요. 첫 번째로 오른 인물이 누구냐면 바로 진시황이에요.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하고나서 6국을 다 무너뜨리고 통일하고 나서 자기가 넓힌 땅의 끝까지 와본 것이 지금의 하북성 갈석산입니다. 그 다음에 갈석산을 오른 인물이 진시황의 아들이었던 2세 황제 호해가 올랐고, 그 다음에 한무제가 올랐어요. 한무제가 갈석산 오르고 돌아가서 그 다음에 조선을 침공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그 유명한 조조가 올랐고. 그래서 조조가 갈석산에 올라서 동림갈석이라고 하는 시를 쓰는데 그 시를 갈석산 올라가다 보면 갈석산 벽에다 써놨죠. 그 외에 갈석산 올랐던 중국 황제들은 대부분 동이족 국가의 황제들이 많이 오릅니다. 그런데 갈석산은 뭐냐면 연산산맥의 남쪽이에요. 연산산맥이 쭉 이어지는데 연산산맥이 바로 지리적으로 중국의 한족과 동이족을 나누는 자연 경계입니다. 그래서 유안이라는 학자가 있는데 그 유안은 유방의 손자죠. 한나라 개국한 한고조 유방의 손자인데 이 사람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회남자라는 책을 쓰는데 회남자 시측훈에서 동방의 끝, 갈석을 지나면 조선이다 라고 하는 글을 남겨요. 중국의 여러 사료들을 찾아보면 갈석산은 바로 지금의 하북성에 있었다라는 걸 알 수가 있는데요. 제가 지금 여기서 말씀드리는 갈석산은 진나라, 한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을 이뤘던 자연국경을 이뤘던 갈석산을 말하는 겁니다. 근데 갈석산에 대해서 중국 기록을 보면 두 종류가 나와요. 하나는 중국 고대 우공조에 나오는 갈석이 있는데. 이때는 갈석을 끼고 하, 황하로 들어온다고 하는 강 하자를 써서 설명하고 있죠. 그 다음에 후대에 나오는 갈석들은 바다 해자를 씁니다. 바다를 끼고 들어온다고 돼있는데 지금 제가 진나라 한나라의 국경선인 갈석산은 바다를 끼고 있습니다. 올라가면 발해가 보이죠. 그래서 갈석산은 지금의 하북성이 맞고. 근데 원래 중국 사료에 우공구주도(자막은 우공 9주조 라고 쓰여있는데 찾아봐야 할듯요..)에 나오는 갈석은 그것보다 더 서쪽으로 가서 있지 않았겠는가라고 하는 건데. 제가 뭐 어디라고 특정할 순 없고 단지 저희가 관심 있는 것은 진나라 한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이었던 갈석산이 어딘가라는 부분인데. 그 갈석산은 지금의 하북성 갈석산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런데 지금 천안문에 중국국가박물관이 있어요. 그 국가박물관 지하 1층에 가 보면 거기부터 전시가 시작하는데 지도가 그려져 있어요. 그 지도에 바로 만리장성을 한반도 평양 부근까지 갖다 놨습니다. 중국 학자들이, 일본 학자가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들어왔다라고 최초로 이나바 이와키치가 1910년에 주장을 했어요. 그러다보니까 중국 학자들이 굳이 자기네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들어왔다는 걸 우리가 거부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중국학자들은 자기네 자존심이 있잖아요. 중화주의 사관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황해도 수안까지 왔다라고 일본인들이 주장한걸 평양까지 온 걸로 조금 수정을 해요. 나름대로 중화사관이죠. 그래서 평양까지 온걸로 수정해서 지금 중국에 국가박물관을 비롯해서 제가 중국의 여러 장성박물관에 가봤는데 전부 다 만리장성이 한반도 북쪽까지 들어온걸로 그려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갖다 전세계에 퍼트리고 있는거죠. 근데 그 뿌리를 찾아보면 전부다 일본의 이나바 이와키치가 한걸 갖다가 이병도가 그대로 따랐고 이걸 현재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그대로 따라 하면서 북한 강역에 갈석산이 있었던 것처럼 전세계 사람들이 잘못 호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바로 잡아야 될 우리나라 국가 기관들이 그야말로 한심한거죠. 교육부를 비롯해서, 물론 동북아역사재단이라든지 국사편찬위원회라든지 한국학중앙연구원같은 국책기관들은 다 식민사학자들이 장악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고. 다른 국가기관들 예를 들어서 청와대라든지 교육부라든지 하는 쪽에서 아니면 외교부라든지 이런 쪽에서 우리 강역을 전부 다 북한까지 만리장성이 들어왔다고 중국이 주장하고 있으면 여기에 맞춰가지고 뭔가 행동을 취해야 되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금 전세계적으로 말도 안되는 만리장성이 북한까지 들어왔다고 하는 억지 주장이 퍼져 나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러는 형편에서 결국은 이 나라를 바로 세울 사람들은 공부하는 저희들하고 이 방송을 듣는 여러분들 밖에 없다는 생각을 제가 여러번 하게 됩니다.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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