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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

기사승인 2022.08.27  17: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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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남, 김명옥, 김종성, 박순경, 이덕일 저 외 3명  | 도서출판 말 | 2022년 08월 25일  |  356쪽 

1911년 독립운동가 계연수가 펴낸 『환단고기』를 강단사학계는 ‘위서’라 규정하고 사료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민족(재야)사학계는 소중화주의에 젖은 사대주의 사관,식민주의 사관는 다른 민족 주체사관을 지닌 사서라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안창호, 정인보 조소앙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단군에 대해 어떤 관점을 취했는지, 조선 시대에 권력층이 단군 관련 사료를 왜 금서로 지정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남과 북의 교과서가 단군을 어떻게 묘사하는지를 비교 분석하고, 평양의 단군릉과 기자릉 파묘 현장 답사기도 실었다. 

이와 함께 『환단고기』를 현대에 전수한 이유립 선생이 강조한 ‘민족의 주체사관’에 관해서도 살펴봤다. 진보적 민족주의자이고 통일운동가인 고 박순경 교수, 강희남 목사의 글도 실려있는데, 이들은 말년에 ‘환단고기’에서 민족의 시원, 민족의 정통성을 찾았다. 북의 학자가 『환단고기』를 주제로 최근에 쓴 글도 실었는데, 이는 북이 단군 관련 비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목차


여는 글 “사대유교인 김부식 해독은 이완용보다 심해” 4
1장 환단고기에 담긴 주체적 역사관과 독립운동가_이덕일 9
2장 기자조선 정통성 주장한 조선 왕실의 단군 사료 파기_김종성 41
3장 대일항쟁기 독립운동가, 한국사 국통을 바로 세우다_이매림 63
4장 남북한 중·고등 역사 교과서의 단군 및 고조선 서술사 연구_김명옥 105
5장 평양 단군릉과 기자릉 파묘 현장 답사기_최재영 151
6장 환단고기 전수자 이유립과 민족의 주체사관_최진섭 189
인터뷰 『한암당 이유립 사학총서』_편집자 전형배 228
7장 환단고기와 구약성서 창세기로 읽는 우주론_박순경 241
8장 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_강희남 279
9장 나에게는 피신할 ‘고구려’ 땅도 없다_강희남 313
10장 단군관계 비사 환단고기에 반영된 력사관_림광철 333
후기 박순경, 강희남, 이유립과의 인연과 환단고기 341

출판사 리뷰
- 이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

『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단군, 환단고기 그리고 주체사관』을 기획하게 된 데에는 여신학자 박순경(1923~2020) 교수와의 인연이 큰 영향을 미쳤다. 기획자가 이 책에 실린 ‘구약성서 창세기와 환단고기로 읽는 우주론’을 쓴 원초 박순경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1991년 9월 8일 서울구치소 접견실이다, 월간 『말』 ‘분단과 사람들’ 주인공으로 선정된 박 교수를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 중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넘게 지나서 기획자는 도서출판 말의 첫 번째 책인 『분단시대의 지식인-통일 만세』(2013)에 들어갈 인터뷰 기사를 쓰기 위해 박순경 교수를 다시 만났다. 이때 한 번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의 전설이 깃든 강화도 전등사의 찻집 죽림다원에서 인터뷰했다. 박 교수는 예전과 변함없이 민족과 통일을 강조했는데, 이분의 발언 중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됐다면 『환단고기』에 관한 언급이었다. 90을 맞이한 나이에 칼 바르트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 저술 작업에 몰입하면서도 틈틈이 상생발송을 보면서 독학으로 『환단고기』를 공부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담아 『통일 만세』에 ‘『환단고기』와 『삼위일체 하나님과 시간』’이란 제목의 글을 실었다.

“신학자가 『환단고기』를 공부하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박 교수는 “민족신학, 통일신학 연구하면서 우리 민족사에 관심을 두게 됐고, 우리 민족사의 시원을 밝히는 작업을 하다 보니 『환단고기』를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라고 답변했다. 민족신학, 통일신학을 추구한 박 교수는 한국의 역사학자 책 속에서 이에 관한 도움을 얻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밝혔다. 박순경 교수는 그 후에도 수차례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환단고기』를 구해서 읽으라고 강권했다. 그러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2020년 10월 24일 박순경 교수의 부고를 접하게 됐다. 거의 백 세를 바라보는 나이였다. 인생길에서 큰 가르침을 안겨 주신 선생이기에 한 인터넷신문에 추모의 글을 기고했는데,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다. “98세의 나이로 돌아가신 박순경 교수님 영전에, 교수님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공부했던 ‘민족개념’, ‘민족시원’을 주제로 한 책을 발간할 것을 출판인으로서 약속드린다.”그 뒤 ‘진보적 민족주의자는 환단고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단행본 기획안을 구상했다. 이번에 펴낸 『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단군, 환단고기, 그리고 주체사관』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말할 수 있다.

-환단고기 평가와 위서론

『환단고기』 는 그 범례에 따르면 평안북도 선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운초 계연수가 1911년에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등 서로 다른 4권의 책을 하나로 묶은 다음 스승인 해학 이기(李沂)의 감수를 받아 제작했다고 한다. 계연수는 1920년 일제에 의해 살해됐고, 현재 『환단고기』의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1979년 남한에서 필사본으로 『환단고기』가 발간된 뒤 이 책을 둘러싼 위서논쟁은 끊이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강단사학계에서는 대체로 위서론을 주장하고 있다.

박순경 교수는 역사학계의 이러한 『환단고기』 ‘위서론’에 관해 “기존 학자들은 자기 이론에 갇혀서 다른 학설이 나오면 배제해. 그 사람들은 그게 무슨 역사냐 그러는데, 일제식민사관에 젖어서, 타성에 빠져서 그런 거야. 시대, 인물, 상황이 구체적으로 나오는 걸 보면 『환단고기』는 결코 위서가 아녜요. 무슨 재주를 부려서 역사적 상상력으로 꾸며낸 책이 아니다.”라며 비판했다.

이 책에 ‘환단고기에 담긴 주체적 역사관과 독립운동가’를 쓴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위서론자들이 작성 시기, 용어 등을 지적하며 위서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환단고기』의 내용보다는 후대에 공개되었다는 공개 시기에 대한 공격에 치중하는 것도 역사학적 방법론과 상치된다. 이런 비본질적인 문제로 전체를 부정한다면 진서(眞書)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사기, 한서(漢書), 후한서, 삼국지 등도 모두 첫 작성 당시의 원고는 존재하지 않고, 여러 필사본이 현전하고 있다. 대부분의 필사본은 필사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한 사서의 진·위서 여부를 결정하려면 공개 시기나 용어 같은 부분적 문제를 전체적 문제로 확대하는 방식보다는 치밀한 사료검증이란 역사학적 방법론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덕일은 위서론을 비판하면서 『환단고기』에 나오는 일부 내용은 조선의 선비 홍만종과 이종휘의 사례에서 보듯이 조선 중·후기에 이미 사료로 전해지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사례를 통해 주자학에 반대하는 양명학자를 비롯한 조선의 선비들 사이에 “주자학적 역사관, 즉 사대주의적인 역사관을 비판하면서 단군을 시조로 보는 주체적 역사관의 흐름”이 전승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

이 책에 글을 쓴 다른 필자들이 주장하는 요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역사저술가 김종성은 ‘기자조선 정통성 주장한 조선 왕실의 단군 사료 파기’에서 조선 왕실이 불교보다 신선교를 더 억압했다고 썼다. 세조는 분서갱유를 연상시키는 왕명을 발포했는데, 왕명에 담긴 금서 목록 속에서, 고조선 및 신선교와 관련된 『고조선비사』, 『삼성기』가 눈에 띈다. 세조의 아들인 예종도 금서 수거령을 내렸는데 ‘고발한 자에게는 상을 주고, 숨긴 자는 참형에 처한다.’라고 했다. 김종성은 고조선과 신선교에 관한 서적들이 조선시대에 탄압을 받고 자취를 감췄다는 사실은 우리가 가진 한국 상고사 지식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와 함께 단군이 나오는 『삼국유사』와 같은 사료들이 금서에서 제외된 이유는 “고조선 역사의 진상을 알려주기에 불충분했거나 고조선 역사의 진상과 배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펴며, 이런 사서는 오히려 비판적으로 인식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기했다.

이매림(이완영)은 ‘대일항쟁기 독립운동가, 한국사 국통을 바로 세우다’에서 한국사가 식민사관이 아닌 독립운동가의 사관, 임시정부의 사관으로 다시 바로 잡혀야 함을 역설했다. 그는 독립운동가 홍범도, 오동진, 안창호, 신채호, 정인보, 김교헌, 조소앙 등의 예를 들면서 이들이 단군, 배달의 역사를 중시했으며, 시민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이를 계승해 하루속히 조선총독부 사관의 올무를 벗어던지고, 독립운동가의 가슴과 피와 정신에 녹아 있었던 ‘단군’을 다시 한국사의 중심에 바로 세워야 한다고 썼다.

최재영(NK vision 2020 설립자, 대북사역자)은 2014년 10월 개천절 행사 참석을 위해 평양 단군릉을 찾았는데, ‘평양 단군릉과 기자릉 파묘 현장 답사기’에서 북이 단군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관해 적었다. 그리고 2015년 방북했을 때 평양 모란봉 기자묘지 위에 세운 송가정을 참관했는데, 이때 동행한 북한 민족학연구소 소장에게 들은 기자묘 파묘 배경도 상세히 적었다. 김부식은 “기자로 인하여 우리 역사가 시작됐다.”라고 했는데, 최재영은 “이는 김부식의 생각만이 아닌 그 시대 지배층들의 보편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 썼다. 고려, 조선의 중화주의적 유학자들에 의해 떠받들어진 기자의 실제 무덤은 평양이 아닌 중국 하남성의 옥수수밭 한가운데 있다고 한다.

김명옥은 ‘남북한 중·고등 역사 교과서의 단군 및 고조선 서술사 연구’에서 해방 이후 최근까지 남과 북의 교과서가 단군과 고조선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비교 분석했다. 1993년 단군릉 발굴 이전과 그 후의 북한 역사 교과서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평양은 단군과 고조선의 중심지가 되었고, 단군을 왕칭에서 실존한 역사 인물이자 조선 민족의 원시조로 확정했다. 건국 시기도 서기전 3000년경으로 끌어 올렸다. 단군은 하나의 이념이 되었으며 ‘조선민족제일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남한 교과서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단군부정론을 여전히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단군은 역사 속 실존 인물이 아닌 신화로 서술된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단군신화의 역사성’이란 말은 단군을 역사로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지만 실제로는 단군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단군은 고려 때 민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만들어진 단군이 민족의 위기 때마다 가령 조선과 구한말에 다시 호명되어서 민중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 것, 이것을 ‘단군신화의 역사성’이라고 하는 것이다. 교과서에서는 ‘민족 문화 전통의 정신적 지주’라는 식으로 표현된다.

최진섭은 ‘환단고기 전수자 이유립과 민족의 주체사관’에서『한암당 이유립 사학총서』, 『이유립 평전-백년의 여정』(양종현), 『환단고기』(안경전 역주)의 해제를 참조하여 이유립의 삶과 역사관을 정리했다. 평북 삭주 출신인 이유립은 부친 이관집이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오동진, 이상룡 등과 같은 독립운동가를 보고 자랐으며, 부친과 함께 광개토비를 답사하기도 했던 『환단고기』를 편찬자 운초 계연수를 자주 접하며 학문적 영향도 받았다. 이유립은 유학자들의 중화 사대주의 노예사관을 비판했으며, 이에 맞서 민족의 주체사관을 바로 세우려 했다. 그는 김부식의 신라중심주의 사관을 부정하고, 고구려중심주의 사관을 제시했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신채호의 역사관을 계승한 이유립은 이병도의 실증사관을 숭명사대주의 잔존사관, 식민사관을 계승한 양두(羊頭)사관이라 비판했다. 굴종적 사대주의를 배격한 이유립은 해방 이후에는 민족의 주체성과 함께 평화적 자주통일을 역설했다.

-통일이념과 진보적 민족주의

이 책에는 통일운동 진영의 원로였던 강희남, 박순경의 유고도 실려있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은 신학교수, 목사이면서 통일운동가의 삶을 살다 가셨으며, 말년에 『환단고기』를 깊이 있게 연구했다는 점이다. 박순경은 생전에 “통일신학에 주력하기로 마음먹은 1970년대부터 한국 역사책을 찾아봤는데 민족문제를 제대로 밝힌 역사학자를 찾지 못했어.”라며 아쉬움을 털어놨다. 『환단고기』를 접한 뒤에야 민족문제의 실마리를 풀 단서를 찾은 셈이었다.

강희남은 『새번역 환단고기』 서문에서 “내가 무엇 한가지 쓸만한 것을 찾아볼 수가 없는 세월을 살다가 어두운 밤길에 작은 반디불을 맞난(만난) 것처럼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본 것이 있으니 곧 『환단고기』라는 책이다.”라며 『환단고기』를 접했을 때의 심정을 밝혔다. 그는 『환단고기』에서 “뚜렷한 주체사관을 발견하고 ‘여기에 우리 민족의 갈 길이 있구나’ 하고 홀로 기쁨에 잠겼다.”라고 썼다.

통일운동가이며 진보적 민족주의자라 할 수 있는 박순경, 강희남 두 분이 『환단고기』에 보인 반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분들이 『환단고기』를 연구한 이유는 민족의 시원을 찾으려는 것과 함께 남북 분단이 반세기 넘도록 지속되는 상황에서 통일이념, 통일의 구심점을 찾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라 여겨진다. 박순경 교수는 “한국 사학자들도 민족시원을 잘 몰라. 진보진영이 걱정할 것은 제대로 된 민족주의가 없다는 것이야. 민족의 과잉이 아니라 민족의 결핍이지.”라는 말을 했다. 민족의 시원, 근원, 뿌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 민족통합의 명분을 찾는 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지식인들은 고구려, 백제, 신라에 민족동질감이 없었을 텐데, 굳이 남북이 하나로 합쳐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도발적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이런 분열적 사고는 남북분단이 기정사실화 된 젊은세대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단 이후 발생한 다양한 남북의 이질감을 좁히려는 노력과 함께 남북의 동질감, 민족의 공통점을 찾기 위한 노력은 통일운동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 필자가 단군을 통해 민족의 동질감을 회복해야 함을 강조했다.

“단군과 고조선의 인식에 대한 성찰은 가까운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남과 북의 체제와 단절된 시간 간극을 우리의 공동 역사가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그 역사의 첫머리에는 단군과 고조선이 놓여 있다.”(김명옥)

“단군과 고조선은 남과 북이 서로서로 공유할 수 있는 역사바로세우기 가치의 영역이다. 이런 분야에서의 공동연구와 협력이 늘어날수록 통일의 그 날은 더욱 앞당겨질 것으로 확신한다. ”(최재영)

“지금은 국민이 역사를 공부하는 시민역사학 시대이다. 또한 남북통일을 대비한 통일사관을 준비해야 할 시대이다. 역사는 사학자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이완영) ,

“쇼비니즘(국수주의)을 경계하면서도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민족의 원형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21세기의 통일이념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지식인들이 우리 민족의 ‘오래된 미래’인 단군을 되살리는 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최진섭)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올바른 역사 인식이 남북교류, 통일의 주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이 책에 실린 북한 학자 림광철의 ‘단군관계 비사 환단고기에 반영된 력사관’ (력사과학, 2021년 4호)은 매우 중요한 텍스트이기도 하다. 림광철은 이 글에서 “이처럼 『환단고기』는 내용서술에서 비록 주관적이고 과장 확대해놓은 부분 그리고 근대에 만들어낸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정한 력사사료에 근거하여 우리 민족사관을 옳게 정립 전개하려고 한 긍정적인 측면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에 덧붙여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한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 단군 및 고조선력사와 고구려력사를 사료적으로 풍부히 하는 데 이바지해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썼는데, 이런 연구는 남북의 역사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댄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 이 책의 발간이 갖는 특별한 의미 세 가지

『환단고기에서 희망의 빛을 보다』에는 이전의 환단고기 류의 책과 다른 세 가지 특이점이 있다.

첫째, 『환단고기』를 현대에 전수한 이유립의 사관, 가치관을 재조명했다. 이유립의 글은 생전에 국수주의적이고, 보수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매체에 주로 실렸고, 이러한 이유로 진보적 성향의 민족주의자들에겐 친숙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한암당이유립 사학총서』(1983)에 실린 글을 통해 그가 강조하는 ‘민족의 주체사관’이 사대주의를 반대하는 진보적 민족주의자의 지향과 거의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한암당이유립 사학총서』를 편집한 전형배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유립은 국수주의자라기보다는 자주적 평화통일을 강조하는 진보적 민족주의자였다.

둘째, 홍범도, 오동진, 안창호, 신채호, 정인보, 김교헌, 조소앙 등 독립운동가들이 단군을 중시했고, 환단고기의 역사적 인식과 맥을 같이 했다는 점을 밝혔다. 이와 함께 평생 통일운동에 앞장섰던 강희남, 박순경 같은 진보적 민족주의자자들이 『환단고기』에 관해 쓴 글을 실었는데, 이들의 관점이 독립운동가들의 단군관과 맥을 같이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셋째, 최근(2021년)에 북의 학자가 『환단고기』에 관해 언급한 글을 함께 게재했다. 그동안 북의 사학자들이 『규원사화』(북애노인, 1675년)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환단고기를 인용하는 사례는 찾기 어려웠으며, 이 책에 소개한 림광철의 ‘단군관계 비사 환단고기에 반영된 력사관’처럼 『환단고기』를 주제로 한 논문은 매우 귀한 글이라 하겠다.

책 속으로

내가 이 원고(우리 민족 정리된 상고사)를 쓰면서 행여나 중간에 병이라도 나서 죽으면 어쩔까 하는 조바심에서 평생의 사명으로 알고 탈고하던 날 나는 원고 뭉치를 붙들고 울었다. 죽지 않고 마친 감격이었다.
--- p.328

필자는 STB 상생방송국의 역사 특강과 상생출판의 『환단고기』의 도움으로 수메르 문명권의 원류인, 동이족의 12환국, 환인(桓因)의 나라의 역사성 논증에 접하면서, 12환국에 속하는 수메르 문명권과 구약성서의 창조론-역사-예언과 종말론의 깊은 관련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 p.42

지난날에는 사문난적이라는 사대주의의 부월(斧鉞, 작은 도끼와 큰도끼)로써 민족의 주체사관을 억누르더니 오늘은 또 침략사관이라는 혼합사대주의의 죽침으로 신사대 노예의 사관을 재건하려는 움직임도 그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는 없다.
--- p.203

이처럼 환단고기는 내용 서술에서 비록 주관적이고 과장 확대해 놓은 부분 그리고 근대에 만들어낸 부분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정한 력사사료에 근거하여 우리 민족사관을 옳게 정립 전개하려고 한 긍정적인 측면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한 연구를 더욱 심화시켜 단군 및 고조선 력사와 고구려 력사를 사료적으로 풍부히 하는 데 이바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 p.342

박찬화 기자 multikore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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