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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재원의 『단군을 만나다 2부』 - ⑤화랑과 세속오계의 연원

기사승인 2017.12.31  12:4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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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반재원의  『단군을 만나다 』 10편에  이어 『단군을 만나다 2부』  단군은 고전의 광맥  10편을 연재코자 합니다.  /편집자 주/

훈민정음연구소 반재원 소장

 

 

 

 

 

 

 

 『한단고기』 13세 흘달단군 20년 무술년(서기전1763년)에 수두를 많이 설치하고 천지화(참꽃)를 많이 심었으며, 청소년들에게 글과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들을 국자랑國子郞(수두에서 수업하는 낭도)이라 하고 다닐 때는 천지화天指花를 머리에 꽂고 다녔으므로 이들을 천지화랑이라 불렀다.

 또 다른 기록에는 원화源花는 아씨(女郞)를 말하고 사내는 화랑이라 하며 또는 천왕랑天王郞이라고 하였다. 단군이 명하여 깃털모자(鳥羽冠)을 쓰게 하였다.

 『한단고기』 6세 달문단군 35년 임자년(서기전2049년)에 여러 제후들과 약속하기를 “한국桓國의 5훈五訓과 신시神市의 5사五事를 지켜야 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5훈은 아비에 효도, 임금에 충성, 부부존경, 형제우애, 장유유서였다. 1세 왕검단군 때에도 신지神誌에게 명하여 5계를 제정하여 가르쳤다.

 따라서 세속오계는 단군조선 때 수두제단에서 세속적으로 쓰던 것인데 뒷날 신라화랑들이 이어 받은 것이다.

 특히 5계 중 살생유택에는 택물擇物과 택시擇時가 있는데 택물에는 불살유不殺幼라하여 어린 것을 죽이지 말라고 했으며 불살익不殺益이라하여 유익한 것을 죽이지 말라고 하였다.

 또 택시에는 불살란不殺卵, 불살숙不殺宿이라 하여 알 깔때와 잠자는 것을 죽이지 말라고 하였으니 불교의 불살생과는 그 뜻이 사뭇 다르다. 원효도 스님이 되기 전에는 화랑이였다.

 원효의 사상이 석가와 다른 점이 3가지이다. 첫 번째는 출가했다가 다시 환속하여 요석공주와 결혼한 점, 둘째는 아들 설총을 불가로 출가시키지 않고 유가의 거두로 키운 점, 세번째는 원효가 펴낸 대승기신론 등 대부분의 저서가 불교 사상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원효의 사상은 우리 고유 사상에 석가의 사상이 녹아들어 있는 독특한 불교사상이다. 화랑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지승용 기자 jsr6867@naver.com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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