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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국제 심포지엄 개최

기사승인 2018.12.28  00:2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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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의 역사성과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이해

광복회(회장 박유철)는 “12월 27일 오후 1시부터 ‘3.1독립선언 100년 . 대한민국 100년의 역사를 탐구한다’는 주제로 광복회.역사강좌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광복회 국제 심포지엄에서 마지막 종합토론을 위해 발표자와 토론자가 모두 한 자리에 앉았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광복회 서울특별시지부(지부장 정재진)의 주최, 서울특별시의 후원으로 진행되었는데, 1965년 2월 27일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가 165번지에서 시작된 사단법인 광복회의 창립 이후 최근 여의도로 이전하여 새 단장한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회원과 관련 인사 등 250여 명의 참여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치러졌다.

전체 2부로 진행된 심포지엄은 이춘근 강동구지회장의 사회로 1부가 시작되었으며 개회사와 국민의례를 마치고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위원장의 격려사와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영상 축사로 진행되었다.

광복회 국제 심포지엄에 회의장을 가득 메운 참관객들의 모습, KBS에서 뉴스 취재를 하고 있다.

영하 12도의 추운 날씨 속에서도 광복회의 국제 심포지엄 행사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2부가 시작되는 오후 2시부터는 많은 인원이 현장 참석을 해 준비한 자리가 부족해 서서 참여하거나 통로 쪽에 앉아 행사 내용을 경청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2부는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했는데 한국과 중국 그리고 프랑스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나와 주제 발표를 하고 관련 전문가가 함께 토론을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제1주제인 한국편에서는 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장석흥 교수의 ‘3.1운동의 역사적 원류와 계승’이라는 내용의 발표가 있었고 충북대학교 박걸순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장석흥 교수의 ‘3.1운동의 역사적 원류와 계승’이라는 내용의 발표가 진행되고 있다.

장석흥 교수는 “3.1운동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전면 부정하고 한국인의 자주 독립 선언함과 동시에 반만년 한국의 정체성을 전 세계에 선포한 것”이라며 “3.1운동이 내걸었던 자유와 정의, 인도와 평화의 기치를 포함한 ‘독립선언’의 뜻에 따라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다.”고 했다. 그리고 “대한제국으로 망한 나라를 3.1운동의 힘으로 대한민국을 일으킨 것이며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그렇게 평민의 시대를 열어갔다. 즉 근대 민족혁명을 통해 민(民)이 성장했다.”고 했다. 특히 “3.1운동 민족대표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가 평민 출신으로 그 중 동학 농민군 출신이 10여 명에 달한다.”고 밝히며 “동학농민전쟁과 개화개혁운동이 3.1운동과 갖는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혀 3.1운동의 역사적 원류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진 제2주제 중국편에서는 중국 연변대 김춘선 교수의 ‘북간도 3.13운동의 독립운동사적 위상’이라는 내용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김교수는 독립운동의 성지로서 북간도의 3.13운동을 이야기하며 1910년 망국 이래 10여 년 동안 25만 명이 북간도로 이주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북간도에는 일찍이 간민회를 비롯한 사회단체와 정치단체들이 생겨났고, 각처에 민족학교들이 세워져 민족교육을 실시해 나갔으며 민족학교에서는 후일 독립전쟁에 대비해 저마다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고 있었기에 국내에서의 3.1운동 소식이 들려오자, 즉각 일으킨 것이 3.13반일시위였다.”며 “3.13반일시위는 만세시위에 그치지 않고 독립군 단체의 건립을 촉발했으며 나아가 봉오동, 청산리 대첩을 비롯한 독립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발표했다.

중국 연변대 김춘선 교수의 ‘북간도 3.13운동의 독립운동사적 위상’이라는 내용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김교수는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3.13운동을 단계별로 살펴 정리하고 북간도가 왜 독립운동의 ‘성지’였는지와 북간도 3.13운동의 독립운동사적 위상을 정리 발표하였고 이에 대해 동북아역사재단의 장세윤위원의 토론이 이어졌다.

파리 디드로대학교(파리7대학) 마리 오랑쥬 부교수가 ‘1919년 3.1운동과 프랑스 언론 보도 내용을 정리해서 발표하고 있다.

마지막 제3주제인 프랑스편에서는 파리 디드로대학교(파리7대학) 마리 오랑쥬 부교수가 ‘1919년 3.1운동과 프랑스 언론 - 식민지 한국과 마주한 프랑스 식민정부-’라는 주제로 프랑스에서 발행하는 모든 출판물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국립도서관(BNF)에서 운영하는 ‘갈리카(Gallica)' 검색엔진을 이용해 1919년 초부터 1920년 9월 초까지 프랑스 언론에 보도된 한국 관련 자료를 정리하여 발표했다. 특히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규식이 파리에서 평화주의,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계열의 프랑스 활동가들과 교류하며 일본의 한국강제병탄에 관한 항의문과 요구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국제 언론에 배포한 사실에 대한 현지 기사 내용을 발표하여 눈길을 끌었다.

우사 김규식 선생의 손녀이신 김수옥 여사와 마리 오랑쥬 교수가 다정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

김규식이 미국으로 가기 직전에 언론을 통해 배포한 항의문과 요구서 내용은 그야말로 격정적이었으며 대한의 독립을 외치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그것은 그해 5월 개최되었던 파리평화회의에서 청원서와 요구서를 제출하려 했지만 일본의 반감을 우려해 한국인들의 회의장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던 프랑스를 포함한 열강들을 향한 한스러움과 반드시 전 세계에 알려야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것에 대한 강한 아쉬움의 표현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프랑스 언론에 소개된 이런 내용들 중 한 프랑스 기자는 김규식의 항의문과 요구서 내용을 소개한 뒤 “대표단의 김규식 대표는 평화회의에 참석한 열강들의 무관심에 대해 성토했다.”며 “4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고, 독립국가로 존재했다가 지금 일본의 속박 아래 꼼짝도 못하고 있는 2천 만 영혼의 간청에도 성의 있게 답하지 않는, 정의와 사상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프랑스에 경악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 전 1918년 1월 18일 미국 국회에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세계평화를 위한 “유일하게 가능한” 계획이라는 내용으로 ‘14개항’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때 발표한 14개항은 그 후 세계평화협상의 기초로 사용되었다. 이런 ‘14개항’에 강한 영감을 얻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에 따라 국제질서의 재편을 앞두고 이를 통해 한국의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신한청년당을 결성하여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게 했다. 이 때 대표단 대표에 김규식을 선임하며 여운홍, 김탕 등과 함께 파리에 보내게 되는데 김규식은 파리에 ‘한국 공보국’을 개설하며 그해 4월 19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외무총장 자격으로 8월까지 파리에 머물렀던 것이다.

마리 오랑쥬 교수와 기자가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프랑스에서는 1년 전에 한국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기 위해 독립운동사 한불연구회(회장 마리 오랑쥬 교수) ‘리베르타스(LIBERTAS)’가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한불연구회 참여인원 중 프랑스인들은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한국에서 참여하는 연구원들은 프랑스의 정보체계와 관리 현황을 잘 이해하지 못해 큰 성과를 못 내고 있는 것이 연구회 결성 1년의 현실적 모습이다.

제3주제인 프랑스편의 토론자로 중앙대학교 장규식 교수가 나섰다

제3주제인 프랑스편의 토론에는 중앙대학교 장규식 교수가 나섰다. 장교수는 프랑스인이지만 한국어를 유창히 하는 마리 오랑쥬 교수에 대한 감사와 제3자의 시선에서 3.1운동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점에 대해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말하고, 특히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한국대표단의 활동에 대한 프랑스 언론의 보도 내용을 발표한 것은 의미할 만한 내용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대표단의 활동에 대한 자료가 너무나 적은 현실에서 프랑스 언론들의 좀 더 자세한 자료와 기사에 대한 보완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며 토론을 마쳤다.

독립선열부녀회 백일선 회장과 광복회 회원으로 헌정회 영토연구 위원장인 김중위 전 환경부장관

국회의사당 앞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진행된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영하 12도의 강추위 속에서도 마지막 마치는 시간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참관객들의 모습에서 내년 3.1운동 10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의 진정한 의미를 조금이나마 가슴에 담을 수 있는 소중한 발표와 토론의 장이 되었다.

새로 세워진 광복회 여의도 광복회관의 모습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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