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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제국의 비밀1 - 龜

기사승인 2020.03.09  16: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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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海 金 昌周 


한국고대문자연구소장
한국백제문화연구소 소장
동아시아옥문화연구학회 사무총장

 

거북이는  한자로 ‘龜’  쓰는데, 거북 귀 로 읽으며,
나라 이름이나  땅  이름으로 쓰일 때는 거북 구 로 읽습니다.
2010년 초봄, 필자가 중국인 사업가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하는 중 아주 희한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중국인  사업가는 컴퓨터 부품 사업을 하는 딜러인데 
약 6개월에 1번씩 한국에 들어와 ​용산에 들러 거래처들을 방문하여
필요한 부품을 주문받아 중국에서 수출업을 주로 하고 있었습니다.
 
2010년 1월경, 용산 거래처에서는 귀한 손님이 왔다하여
종로 유명한 식당으로 중국인 사업가를 초대하여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고
목걸이 하나를 선물하게 됩니다.


 
​그런데 화근은 선물로 받은 조그마한 거북이가 달려있는 목걸이에서 시작됩니다.
 
중국인들에게는 거북이나 거북이 알이 아주 상스럽고 엄청난 욕으로
수치심을 유발하는 최악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거북이를 선물 받은 중국인은 그날 이후로
9년이나 거래한 거래처와 결별하고 그 이후로 다시는 통화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연 중국인들은 ‘거북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관점과 시각으로 보길래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필자는 그 당시 상당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필자는 아는 지인들과 함께 조그마한 역사단체를 만들어
중국 역사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중국 현지를 다니면서 ‘왜? 중국인들이 거북이를 싫어하는지?’를 물어보아도
다들 혐오스러운 존재라고만 말할 뿐
시원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이 거북이를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이 글의 말미에 자연스럽게 풀릴 것입니다.
 
중국의 한나라 무제 시절, 무제의 장수 곽거병은 감숙성 무위시에 본거지를 둔 흉노를 정벌합니다. 그 당시 휴도왕 ‘혼’은 전사하고 부인과 함께 아들 일제와 아우 윤이 곽거병의 포로로 붙잡히게 됩니다.


 
포로로 잡힐 당시의 휴도왕 혼의 아들 일제와 윤(胤)의 姓은(모계) 연제였습니다.
한나라에 포로로 끌려와 말 기르는 일을 맡던 일제는, 무제의 눈에 띄어 등용되어 마감(馬監)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시중(侍中), 부마도위(附馬都衛), 광록대부(光祿大夫)에 오릅니다.
 
일제는 기골이 장대하고 위엄 있는 체구에 일을 잘 처리하였고
한무제의 두터운 신임 속에도 경거망동 하지 않고 맡은 바 임무에 착실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한무제를 시해하려는 망하라(莽何羅)의 암살 시도를 막아 그 공으로 거기장군(車騎將軍)에 이어 투후(秺侯)에 봉해졌습니다. ‘투’ 지역이란 지금의 산동성 하택시 일대이며 ‘후’란 제후라는 뜻으로 투후는 한 지방의 왕권을 가지게 됩니다.

한무제는 흉노가 금인(金人)을 만들어 천신에게 제사지내는 풍습을 보고 김일제에게 김(金)이라는 氏(부계)를 내려줍니다.
 
휴도왕이 천제를 지낼 때 사용한 금인(金人)이란, 그 당시 가장 값지고 귀한 옥기를 神의 모양으로 조각하여 아주 귀한 철광물로 특수 합금한 옥조각 합금상을 말합니다.
 
금인(金人)은 아주 많은 종류와 기형이 전수되고 제작되었습니다.
‘일제’라는 이름은 日 + (石+單) = 태양 + (돌+매미)를 뜻합니다.
 
태양을 숭배하는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을 휴도왕이라 하였으며, 휴도왕은 우리말로 소도왕이며 소도란 하늘에 제사 지내는 곳으로, 옥으로 만든 매미(石+單)를 목에 패용한 자가 천제를 지낼 수 있는 휴도왕(소도왕)이 됩니다.
 
산동성 제후가 된 김일제는 흉노(hun,韓겨레) 3만 명을 산동성으로 이주시켰고,
그의 후예들이 나중에 한나라 조정의 실권을 잡게 됩니다.
 
김일제의 증손인 김당은 서기 8년 이모부인 왕망(王莽)을 도와 한나라(전한)를 멸망시키고,
신(新)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김일제의 투후라는 작위는 아들 金賞-金尙-金國-金當 으로 이어졌고, 김일제의 동생 김윤(金胤)은 포로로 잡혀 일찍 죽고 ,그의 아들 김안상(金安上) 이 지금의 사천성 지역의 성도후(成都侯)가 되어 金常-金欽-金湯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한(漢) 왕조의 유(劉)씨 세력들이 전국에서 힘을 결집해 신(新)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유씨 왕조(후한)를 세우자, 김일제 후손들이 중국 대륙에서 역적으로 몰리게 되었고 ,
대륙에서 피난하여 한반도로 내려와 가야와 신라의 왕족이 되었습니다.
 
김일제의 증손자 김당의 아들 金星이 이끄는 왕족들이 한반도 남해안으로
또한, 일제의 동생 김윤의 증손자 金湯이 이끄는 무리들이 한반도 남해안으로 이주하여, 각기 신라와 가야국의 왕이 되게 됩니다. 김일제의 후손 金星이 이끄는 왕족들은 북경근처로 피신하였다가 천진항 부근을 출발하여 황해 바다를 통하여 현재의 경주에 도착하게 되고,
김윤의 증손자 金湯이 이끄는 왕족들은 사천성 성도를 탈출하여 장강(양쯔강)을 따라 내려와 황해바다를 통하여 현재의 김해에 도착하게 됩니다.

-2편에서 계속-

 

◆ 참고문헌 ◆
 
김해김씨 원대동보
김해 은하사 취운루 중수기 
후한서 고금지명대사전
중국고고학보(1950)
삼국사기
삼국유사
홍사한은
동사강목
아방강역고
조선왕조실록

 

-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차보람 기자 carboram@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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