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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눌의 『깜박 잊은 우리말』 - 경당(扃堂)의 변천사 (1)

기사승인 2022.11.04  17: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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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당(扃堂)의 명칭이 새삼스럽다. 경당이 설치된 것은 BC 2267년이다. 세계 최초의 교육기관이다. 고조선 초기 국가 주요 지역에 소도(蘇塗)를 두고 설립, 계급 구분 없이 평민, 귀족 자제가 함께 교육을 받았다. 소도는 제천(祭天)의 성지였다. 전국 열 두 명산(名山)에 세웠다.

이들은 육예(六藝)를 연마, 문(文) 무(武)를 겸전하고 삼신일체(三神一體)의 도를 일깨웠다. 육예는 “대체로 글을 읽고(讀書), 활을 쏘며(習射), 말을 타고(馳馬), 예절을 익히고(禮節), 노래와 음악을 배우며(歌樂), 격투기와 검술(拳搏) 등의 여섯 가지 기예(六藝)를 말한다.” 

‘독서’는 인문, 역사, 과학, 기술을 망라한 글을 읽고 쓰는 과목이다. ‘활쏘기’는 정신수양이며, ‘말 타기’는 집단 체육으로 군사 기동훈련을 겸한다. ‘예절’은 자신의 뿌리인 하늘과 조상에 제사하고, 사회 구성원에 대한 규범을 포함한다. ‘노래와 음악’은 ‘어아가’로 이어진다. 한류(韓流)의 토대이다. ‘검술과 격투기’는 지도자 훈련의 필수 요소이다. 문무(文武) 겸전을 망라했다.

태백일사(太白逸史)에 “소도의 옆에는 반드시 경당을 세우고 결혼하지 않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사물을 익히고 연마하게 하였다”고 했다. 귀천(貴賤)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경당의 시원과 존재에 대해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는 고구려로 한정하여 깎아내리고 비하했다. 춘추필법(春秋筆法)의 전형적인 수법이 동원됐다. 

경당에서 경(扃)자를 ‘빗장 경’으로 풀이하여 속되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경’은 ‘밝은 경’이다. 밝게 살피는 모양을 경경(扃扃)이라 한다. ‘내 마음이 밝고 밝다(我心)’는 뜻이다. 기예(六藝)의 현장은 밝고 평화로운 수련의 도장으로 산상 수훈의 터였다. 

경당은 1천 1백여 년이 지나 周나라 주공 단(周公旦)이 주례(周禮)라는 이름으로 바꿔 찬했다. 독서는 서(書), 습사(習射)는 사(射), 치마(馳馬)는 어(御), 예절은 예(禮), 가악은 악(樂), 권박(拳搏)은 수(數)로 변형했다. 속칭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가 되었다. 여기에 육덕(六德: 知·仁·聖·義·忠·和)과 육행(六行: 孝·友·睦·婣·任·恤), 육경(六經)을 덧 붙였다. 

이후 경당은 공자의 춘추필법에 따른 유가(儒家)와 사대모화(事大慕華)를 신봉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에 의해 그 자취가 단절됐다. 다행히 환단고기에 기록이 생생히 살아남아 천추(千秋)를 숨 쉬게 했음이 가슴 벅차게 한다.

 

김만섭 기자 kmslove21@hanmail.net

<저작권자 © 한韓문화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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